제주도, 분산에너지 확산 3차 토론회
전기차 배터리 전력망 연계 V2G 소개
히트펌프·축열로 난방비 절감 실증 공유
노후주택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사례 발표
요금제·보상체계·참여 차종 확대가 과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에서 남는 재생에너지를 전기차와 주택, 농업시설에 저장해 도민 소득과 에너지 비용 절감으로 연결하는 실험이 속도를 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전기를 생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남는 전기를 어디에 저장하고 언제 다시 쓸 것인지가 제주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26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는 지난 22일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도민과 유관기관, 에너지 거버넌스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형 분산에너지 확산 3차 도민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에너지로 돈 벌고, 스마트하게 쓰는 법-에너지 톡톡'을 주제로 진행됐다. 전기차와 주택, 시설하우스를 에너지 자산으로 활용하는 실증 사례가 도민에게 공개됐다.
제주가 분산에너지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 비중이 커질수록 전기가 많이 생산되는 시간대와 실제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가 어긋난다. 낮에 전기가 남으면 발전기를 멈추는 출력제한이 발생하고, 밤에는 다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남는 전기를 버리지 않고 저장해 다시 쓰는 기술이 필요한 배경이다.
분산에너지는 대형 발전소에서 먼 지역으로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전기를 쓰는 지역 가까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를 뜻한다. 정부도 지난해 제주와 전남, 부산 강서, 경기 의왕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했다. 분산특구에서는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직접거래, 다양한 요금제, 전력 신산업 실증이 가능하다.
■ 전기차, 이동수단에서 '움직이는 배터리'로
첫 발제에 나선 한미숙 ㈜헤리트 대표는 전기차를 에너지 자산으로 활용하는 차량-전력망 연계(V2G) 모델을 소개했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필요할 때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낮에 태양광 전기가 많이 생산될 때 전기차를 싸게 충전하고, 전력 수요가 몰리는 저녁에는 전기차 배터리 전기를 전력망에 되팔아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전기차가 교통수단이면서 작은 에너지저장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제주도와 협력해 V2G 시범서비스를 일반 도민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9 또는 기아 EV9을 보유하고 양방향 충전기 설치가 가능한 제주도민 40명을 선정해 실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쏘카와 함께 제주에서 V2G 시범서비스도 운영해 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반 도민 대상 실증과 쏘카 렌터카 대상 실증을 포함해 전기차 60대, 교류(AC) 양방향 충전기를 활용한 국내 V2G 실증 현황이 소개됐다. 제주 전기차 보급률이 전국 최고 수준인 만큼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 안정 자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전기를 되팔 때 얼마를 보상할지, 배터리 수명 저하를 어떻게 반영할지, 어떤 차종과 충전기를 허용할지 정해야 한다.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익 구조가 만들어져야 참여도 늘 수 있다.
■ 히트펌프·축열로 난방비 줄이는 P2H 모델
오승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전기를 열로 바꿔 저장하는 전력-열 전환(P2H) 모델을 발표했다. P2H는 남는 전기를 히트펌프로 물이나 축열재에 열로 저장한 뒤 난방과 온수, 시설하우스 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히트펌프는 전기로 열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등유나 LPG를 태워 난방하는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태양광 잉여전력을 활용하면 연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토론회에서 공개된 도내 5가구 주택 실증에서는 화석연료를 모두 대체하면서 난방비를 30~70% 줄이는 성과가 나왔다. 토마토·애플망고 시설하우스 실증에서는 연간 8845만원의 경제적 편익이 확인됐고, 투자비 회수 기간은 약 7년으로 제시됐다.
김대현 제주개발공사 주거복지사업본부장은 제주시 화북동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한 '에코패밀리하우스' 사례를 발표했다. 31년 된 3층 주택에 19.08㎾ 규모 태양광과 히트펌프를 연계해 가스요금을 없애고 가계 총에너지 비용을 약 80% 줄였다는 설명이다.
이 사례는 분산에너지 논의가 대규모 발전소나 전문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낡은 주택, 농가, 시설하우스, 전기차 보유 가구도 에너지 전환의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도민 입장에서는 탄소중립보다 전기요금과 난방비 절감이 먼저 체감되는 지점이다.
■ 보상체계·요금제 없으면 실증에 머물 수도
관건은 제도 설계다. V2G와 히트펌프가 실증에서 성과를 냈더라도 도민에게 실제 수익과 절감 효과가 돌아가려면 요금제와 보상체계가 따라와야 한다. 전기를 충전할 때와 되팔 때의 가격 차이, 축열 설비 설치비, 유지관리 비용, 안전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전기차 차종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 V2G 실증은 일부 차종과 양방향 충전기 중심으로 진행된다. 참여 차종과 충전 인프라가 제한되면 도민 체감도는 낮아질 수 있다. 공동주택 거주자, 렌터카 업체, 농가, 소상공인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도 구체화해야 한다.
제주도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실행계획에 반영할 방침이다. 도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참여 방법을 정리한 '분산에너지 질의응답(Q&A)' 책자도 제작하기로 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에서 만들고 있는 에너지 모델이 대한민국 모델이자 국제 표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에너지 플랫폼이 새로운 K-에너지 수출 모델이 되고, 제주는 그 선두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히트펌프와 전기자동차 보급사업에 대한 도민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주택과 전기차에서 시작한 논의가 농업과 제조업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도민과 전문가들의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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