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멀어져야 보이는 깊은 산세, 천년의 풍류… 눈 앞에 펼쳐진 한 폭 수묵화[Weekend 레저]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9 04:00

수정 2026.05.29 07:47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③여산(廬山)

멀리선 산줄기, 가까이선 겹겹 봉우리
보는 자리마다 달라지는 여산의 진면목
서림사 벽에 쓴 소동파의 깨달음 흔적
폭포 아래 울려퍼진 이백의 '비류직하삼천척'
도연명은 속세에서도 남산 바라보며 풍류즐겨

자연과 시(詩)가 조화를 이루는 명산, 여산
자연과 시(詩)가 조화를 이루는 명산, 여산

장강 중류와 하류의 분기점인 호구(湖口)에서 멀지 않은 강서성 최북단에 오래된 역사문화도시 구강(九江)이 있다. 예부터 호남·호북·강서·안휘의 교차지에 있어 교통의 요지였고, '천하의 눈썹과 눈에 해당하는 땅'이라 불려왔다. 이 구강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가 바로 '시의 산'으로 불리는 여산(廬山)이다.

여산은 강서성 북부 막부산맥의 동단부를 이루는 명산으로, 광산(匡山)이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약 1600m. 381년 진나라 고승 혜원이 입산한 뒤 정토종의 성지가 되었고, 수많은 사찰과 문인들의 일화가 남았다.

동림사, 서림사, 백록동서원, 도연명의 옛 자취, 이백이 노래한 폭포가 모두 이 산에 깃들어 있다.

소동파의 담장 낙서로 유명한 서림사
소동파의 담장 낙서로 유명한 서림사
제서림벽(題西林壁)
제서림벽(題西林壁)

■동파의 담장 낙서로 명찰이 된 절, 서림사

서림사(西林寺)는 여산의 오래된 고찰이다. 세월을 따라 부침을 거듭했지만, 오래된 고탑이 아직도 높이 솟아 그 이름난 사찰의 건재함을 보여준다. 이 서림사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소동파의 '제서림벽(題西林壁)' 때문이다. '서림사의 벽에 시를 쓰다'라는 뜻의 이 칠언절구는 동파가 유배지를 향하던 길에 여산을 유람하고 쓴 작품이다.

가로로 보면 산맥이요 옆으로는 봉우리
원근고저 각기 다른 모습이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은
내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은 보는 자리마다 모습이 달라진다. 멀리서 보면 산맥처럼 이어지고, 가까이서 보면 높은 봉우리가 된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풍경도 다르다. 동파는 여산의 기이하고 수려한 모습을 한마디로 담아내려 했지만, 끝내 그 전체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언제나 여산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깨닫는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때문에 이 시는 단순한 사경시가 아니라 철리시가 된다. 어떤 일이나 상황을 제대로 보려면 그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이른바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청(旁觀者淸)'의 이치다.

도연명기념관
도연명기념관
도연명 입상
도연명 입상

■국화 따며 산 노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을

소동파가 특별히 흠모한 시인이 있었다. 이백도 두보도 아니었다.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이었다. 도연명의 고향이 바로 여산 자락에 있다. 여산은 도연명을 낳고, 그의 시를 길러낸 어머니 같은 산이다. 도연명의 시에 등장하는 '남산'도 바로 이 여산을 가리킨다. '음주(飮酒)' 제5수는 도연명의 삶과 여산의 정취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집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는 법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네
산 기운 저녁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 더불어 돌아간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려니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

도연명은 사람 사는 세속에 살았지만 부귀영화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수레와 말'은 바로 그런 세속적 가치의 상징이다.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는 법"이라는 말은, 몸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마음이 무엇에서 멀어졌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속 한가운데 있어도 마음이 욕망에서 멀어지면 그곳이 곧 깊은 산중인 것이다. 가을날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문득 남산을 바라본다. 저녁 산기운은 아름답고, 새들은 더불어 돌아간다. 시인은 그 속에서 삶의 참뜻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서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고 한 것이다.

구강현 사하가(沙河街) 동북쪽에는 도연명기념관이 있다. 도연명의 사당 정절사(靖節祠)를 기념관으로 확장한 곳이다. 그 안에는 술을 거르던 두건을 쓴 도연명의 입상이 서 있고, 기념관 뒤쪽에는 그의 오래된 무덤이 있다. 그러나 이미 1600년이 흘렀으니 무덤보다 더 깊은 것은 여산 그 자체일 것이다. 그의 넋은 진즉 여산의 흙과 나무와 바위가 되어 있을 터이다.

몇해전 봄날, 나는 기념관을 나와 밭둑길을 서성였다. 꽃을 따고 바람 냄새를 맡으며 그를 그리워했다. 문득 고개 들어 여산을 바라보니, 그 옛날 도연명이 한가롭게 바라보던 바로 그 여산이 나를 다정스레 굽어보고 있었다.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여산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여산
수봉폭포라고도 불리는 여산폭포
수봉폭포라고도 불리는 여산폭포

■비류직하삼천척, 여산폭포

도연명을 흠모한 것은 소동파만이 아니었다. 이백 역시 도연명의 진솔한 삶을 사랑했다. 그의 시 '산중에서 은자와 술을 마시다(山中與幽人對酌)'에는 그 풍류가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이 대작하니 산에 꽃이 피네
한잔 한잔 또 한잔
나 취해 졸리니 그대 그만 가시게
내일 아침 생각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나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

제3구 "나 취해 졸리니 그대 그만 가시게"는 도연명의 음주 후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토록 도연명을 좋아했던 이백이 도연명의 고향 여산에 올라 천고에 남을 시를 남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다.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색 연기가 이는데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앞 강물을 걸쳐놓은 듯
직하 삼천척 날아 흘러 떨어지는 물
은하수가 구천에서 쏟아지는가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이 시에서 노래한 폭포는 여산의 학명봉과 구배봉 사이로 떨어지는 수봉폭포(秀峰瀑布)다. 여산에는 삼첩천(三疊泉)처럼 더 장대한 폭포도 있지만, 수봉폭포가 여산 대표 폭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순전히 이백 때문이다. 남송에 이르러서야 널리 알려진 삼첩천은 '비류직하삼천척'이라는 최고의 예찬을 얻지 못했고, 그 영광은 수봉폭포가 차지했다. 이 시는 이백이 스물다섯살 무렵, 청운의 꿈을 안고 사천을 떠나 중원으로 향하던 시기에 지은 작품이다. 젊은 이백의 패기와 상상력이 여산의 폭포를 만나 한 폭의 관폭도(觀瀑圖)가 되었다.
해가 향로봉을 비추고, 폭포가 앞 시내에 걸린 듯하며, 물줄기는 은하수처럼 하늘에서 떨어진다. 폭포의 기세가 곧 젊은 시인의 기세다.


천하의 명산, 여산으로 가자. 서림사에서는 동파의 시벽을 읽으며 삶을 바라보는 거리를 배우고, 도연명의 옛 마을에서는 국화와 남산 사이에 깃든 참뜻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여산폭포 아래에선 젊은 이백의 힘찬 목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비류직하삼천척!" 폭포를 타고 은하로부터 내려오는 힘찬 기운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시원하게 흘러들지 모른다.

멀어져야 보이는 깊은 산세, 천년의 풍류… 눈 앞에 펼쳐진 한 폭 수묵화[Weekend 레저]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