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10편
20세기 말까지 이 장벽은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기계 번역의 꿈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전환점은 2010년대에 찾아왔다. 딥러닝과 대규모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기계는 언어의 규칙을 배우는 대신 언어의 패턴을 통째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구글 번역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단어를 1대 1로 갈아 끼우던 기계가 문맥을 파악하고 인간의 말투까지 흉내 내기 시작했다. 번역은 복사가 아니라 재구성이 되었고, 치환이 아니라 해석이 되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외국어 메뉴판을 실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유튜브 영상에는 자동 자막이 붙었다. 언어 장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붕괴가 진정한 해방을 뜻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인간의 생각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같은 '눈'을 보아도 한국어의 '눈', 영어의 'snow', 이누이트 언어의 수십 가지 표현은 서로 다른 세계 인식을 담고 있다. 번역기가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외국어를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언어 학습은 단순한 소통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고 체계를 직접 통과해 보는 경험이다. 번역기는 이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생략은 곧 깊이의 상실로 이어지기 쉽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의 평준화다. 기계 번역은 가장 무난하고 평균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소수 언어와 방언은 설 자리를 잃고, 세계는 가깝게 연결되어 가지만 표현은 단조로워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번역기는 언어를 연결하면서 동시에 언어를 소멸시킨다.
번역기의 시대는 바벨탑의 재건도, 완전한 붕괴도 아니다. 번역기로 사고를 대신할 것인가,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로 쓸 것인가. 번역된 문장을 그대로 소비할 것인가, 그 문장이 왜 그렇게 표현됐는지를 질문할 것인가. 바벨탑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 잔해 위에서 어떤 언어를 다시 쌓을지는, 우리의 몫이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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