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서 너무 쉽게 잡히는 지푸라기 '불법 사채의 덫']
기자가 직접 '급전 상담'해봤더니 개인정보 요구부터 시작
대포폰·대포통장 뒤에 숨은 업자들, 지인 연락처로 압박
생활비와 병원비, 카드값이 막힌 사람들은 제도권 금융 밖에서 다른 길을 찾습니다. 그 길목에는 '간단한 상담'처럼 보이는 불법 대출도 있습니다. [낮은 곳의 기록자]는 실제 사채·불법 대출 상담을 통해 돈을 빌리기 전부터 개인정보가 어떻게 담보가 되는지, 피해자들의 고통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돈 안 급해요? 급하니까 여기 전화한 거 아니야."
기자는 최근 며칠간 온라인 대출 광고와 메신저 상담 채널을 통해 사채·대부 상담을 직접 시도했다. 실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어떤 경로로 불법사금융 상담에 접근하고, 상담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요구받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온라인 대출 광고를 보고 300만원 대출이 가능한지 문의하자, 휴대전화 너머 목소리는 처음엔 차분했다. 상대는 이름과 생년월일, 거주지, 직업을 차례로 확인했다. "담당자가 확인해드리겠다"는 말까지 이어지자 상담은 일반 금융회사 대출 심사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가족과 지인, 직장 관계자의 연락처를 요구하면서 달라졌다. 기자가 "제가 빌리는 돈인데 왜 주변 사람 번호가 필요하냐"고 묻자 상대는 더 이상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돈이 안 급하냐"고 되물었다.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해주겠다던 상담은 몇 분 만에 주변인 연락처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업체 상담사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급전 광고 누르자 곧바로 상담 채널로
포털 검색창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당일 가능", "무직자 가능", "신용 상관없음", "모바일 대출" 같은 문구가 어렵지 않게 노출됐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이를 누르면 곧바로 채팅방이나 상담 채널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상담 과정에서 SNS 계정이나 주변인 정보까지 요구받을 경우, 해당 정보는 피해자의 지인 관계를 파악하거나 추심 압박에 악용될 수 있다.
상담은 대체로 평범한 대출 문의처럼 시작됐다. 한 곳은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를 남겨 달라고 했고, 다른 채널은 '상품 승인 조회 중'이라며 채팅방을 나가지 말라고 안내했다. 또 다른 곳은 휴대전화 개통을 활용하면 소액 대출보다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대화창 화면에는 '사업자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채널'이라는 경고가 떠 있었지만 상담은 계속 이어졌다.
채널은 달라도 요구하는 정보는 비슷했다. 대출 가능 금액이나 금리, 상환 방식보다 먼저 신상 정보와 연락 가능한 주변인을 확인하려는 흐름이 반복됐다. 가족 연락처와 친구 번호, 직장 관계자 정보, 회사 전화번호를 제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은행 대출에서 주로 확인하는 소득이나 신용보다, 돈을 갚지 못했을 때 압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번호 넘기자 하루에도 수십통 불법 대출 전화
기자가 주변인 연락처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상담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상대는 대출 가능 여부나 심사 절차를 설명하기보다 "다른 데 알아보라"는 식으로 대화를 끊었다.
대출 계약서를 쓰거나 실제 입금이 이뤄진 단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남긴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일부는 이미 상대에게 넘어간 뒤였다. 기자가 대화를 중단한 뒤에도 며칠 동안 비슷한 대출 안내 전화가 이어졌다. 전화번호 검색 앱에는 일부 번호가 '대출', '대출 안내', '주의' 등으로 표시됐다. 하루에도 수십통이 걸려와,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기자는 취재용 듀얼번호(투 넘버)를 사용했기 때문에 번호를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실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월세와 병원비, 카드값, 생활비가 막힌 상황에서 가족 연락처와 직장 정보까지 넘긴 뒤라면 상담을 끊는 것만으로 관계를 끝내기 어렵다. 돈을 빌리기도 전에 개인정보와 주변 관계가 먼저 약점으로 잡히는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실제 피해자 접촉도 시도했지만, 다수는 언론 노출을 꺼렸다. 신원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부담과 추가 보복 우려가 컸다. 이미 추심 전화와 주변인 연락을 겪은 피해자들은 일상이 노출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불법 추심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남아 있는 만큼,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상담 채널은 휴대전화를 추가로 개통하거나 단말기 할부를 이용하는 방식도 안내했다. "신용점수에 영향이 없다"는 말도 붙었다. 그러나 휴대전화 개통과 할부 계약은 결국 개인 명의로 남는다. 단말기 대금이나 통신요금이 밀리면 연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유심이나 명의가 다른 범죄에 악용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신고 늘었지만, 추심은 더 집요하게
불법사금융 피해는 상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이 2025년 3월 발표한 '2024년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 상담 실적'에 따르면 2024년 접수된 불법사금융 관련 피해 신고·상담은 6만3187건이었다. 이 가운데 피해신고는 1만5397건으로 전년보다 1646건, 12.0% 늘었다. 불법대부 관련 신고는 1만4786건이었다.
피해자가 체감하는 압박은 숫자보다 빠르다.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이기동 소장은 "처음에는 조곤조곤 상담을 이어가다가 돈을 빌리는 순간 180도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알면 안 된다는 공포, 회사에서 잘릴 수 있다는 공포, 지인이 알면 안 된다는 공포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불법사금융업자들이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해 모습을 숨긴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알고 있는 것은 카카오톡 대화방과 전화 목소리뿐인 경우가 많다. 업자는 전화기와 통장을 바꾸고, 사무실을 옮기거나, 자신의 위치를 노출 시키지 않는 숙식이 가능한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상대를 특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사이 불법 추심은 계속된다. 이 소장은 "돈이 1분 늦을 수도 있고 하루 늦을 수도 있는데, 이들은 그런 꼬투리를 잡아 돈을 더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체 사진을 보내라, 통장을 만들어 달라, 유심을 만들어 달라며 2차·3차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강화됐지만 심리적 신고 문턱은 여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금융기관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며, 중저신용자들이 제2금융권과 대부업, 사채업으로 밀리는 현실을 지적했다.
제도 보완도 이뤄졌다. 지난해 7월 22일부터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은 반사회적 대부계약의 효력을 제한한다. 성착취, 인신매매·신체상해, 폭행·협박을 동원한 계약이나 법정 최고금리의 3배인 연 60%를 넘는 초고금리 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가 될 수 있다. 반사회적 계약이 아니더라도 불법사금융업자와 맺은 이자계약은 무효로 볼 수 있다.
올해 3월 9일부터는 불법사금융 원스톱 종합·전담 지원시스템도 본격 가동됐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들은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과 회사에 알려질까 두려워 신고를 미루는 경우가 있고, 증거자료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추심은 이어질 수 있다. 피해자가 알고 있는 연락처나 계좌가 대포폰·대포통장인 경우도 많아, 신고 이후에도 불안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족·직장까지 번지는 불법 추심
추심은 피해자 본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가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전화를 계속 걸어 영업을 방해하거나, 회사 대표와 동료에게 연락해 돈을 대신 갚으라고 압박하는 방식도 있다. SNS에 차용증을 올리거나 지인을 태그해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까지 협박 수단으로 쓰인다.
기자가 상담 단계에서 느낀 압박은 짧았다. 통화를 끊으면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에게는 끊을 수 없는 자신의 일상 관계망이 담보로 잡힌다. 가족 번호, 회사 번호, 지인 연락처, SNS 계정이 모두 추심의 통로가 된다. 돈을 빌린 사람은 원금과 이자를 계산하기보다 오늘은 누구에게 연락이 갈지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이 소장은 "15만원을 빌렸다가 6개월 뒤 1억5000만원까지 뜯긴 사례도 있다"며 "계속 돈을 빼앗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갚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갚을수록 더 강한 추심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불법사금융은 단순한 사채가 아니라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한 신종 금융범죄로 봐야 한다"며 "돈을 빌리는 순간 개인정보가 약점이 되고, 그 약점을 이용해 피해자를 계속 붙잡아두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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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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