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5월 20일 밤,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을 한 시간 앞두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새로 도입된 특별경영성과급은 반도체(DS)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삼고, 지급률 상한 없이 10년간 적용된다. 언론은 100조원대로 추산되던 피해를 막은 극적 타결에 환호했다.
그런데 합의문을 경영전략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환호 뒤에 가려진 무거운 결정이 보인다. 이 교섭에서 노사가 사활을 걸고 다툰 진짜 쟁점은 성과급을 '얼마' 주느냐가 아니었다.
노조가 진짜 원한 것은 '액수'가 아니었다
협상 초기, 노조는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15%로 낮췄지만 핵심은 같았다.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라는 비율을 못 박고, 상한선도 없애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회사가 돈을 버는 만큼 자동으로 성과급이 따라 나가는 구조를 만들자는 요구였다. 그동안 삼성의 성과급은 회사가 그때그때 형편을 봐서 정하는 방식이었기에, 노조는 "실적이 나면 정해진 몫은 무조건 우리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려 한 것이다.
최종 합의안을 보면, 삼성은 이 요구의 골격을 받아들였다. 새로 만든 특별경영성과급은 DS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삼고, 지급률 상한을 따로 두지 않으며, 무려 10년간 적용하기로 했다. 노조가 원하던 '비율 고정'과 '상한 폐지'를 거의 그대로 제도로 굳힌 것이다. 그동안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을 외치며 재량권을 지켜 온 삼성으로서는, 스스로 손발을 묶는 쪽으로 크게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삼성이 이런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합의를 서두른 이유는 분명하다. 당장 눈앞의 파업을 막아야 했고, 무엇보다 핵심 인재를 붙잡아야 했다.
물론 안전장치는 달아 두었다. 특별성과급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 DS부문이 매년 영업이익 200조원, 그 이후 7년간 매년 100조원을 달성해야 지급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목표에 못 미치면 약속은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조건이 안심할 근거가 되긴 어렵다. 법적으로는 조건 미달 시 지급 의무가 사라지지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임직원의 기대치가 학습되고 나면 그 약속을 거두는 데는 노사관계의 정치적 비용이 따라붙는다. 한번 10년짜리 제도로 못 박은 약속을 실제로 거두는 일은, 처음부터 주지 않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렵다.
인텔이 보여준 '약속의 청구서'
좋을 때 한 약속이, 나쁠 때 어떤 청구서로 돌아오는지는 인텔이 뼈아프게 증명했던 적이 있다. 한때 반도체 황제였던 인텔은 잘나가던 시절, 사람과 공장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그러나 시장이 등을 돌리자, 그렇게 불려 놓은 고정 비용이 그대로 짐이 됐다. 인텔은 2024년 한 해에만 약 1만 5천 명을 내보냈고, 구조조정과 자산 손실로 수십억 달러를 회계에 털어내며 분기 영업적자로 주저앉았다. 호황기에 늘려 놓은 비용을 불황기에 고스란히 토해낸 것이다.
여기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사이클이 큰 산업에서 한번 고정시킨 비용은 곧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가 된다. 그런데 삼성은 이번에 정확히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한 없는 성과급 비율을 제도로 약속한 것이다. 반도체 경기가 지금처럼 좋을 때야 빛나는 약속이지만,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이 약속은 삼성의 발목을 잡는 무게로 바뀐다.
물론 인재 확보라는 동기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면서 가장 쉽게 떠날 수 있는 자산이다. 보상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인재를 묶어 두는 것은,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 분명한 전략적 선택이다. 문제는 그 대가가 미래로 미뤄졌을 뿐 사라진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확보한 인재와 평화의 비용은, 다음 불황기에 줄이기 가장 힘든 고정비라는 청구서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진짜 전략은 '비율을 묶느냐, 푸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인재를 붙잡기 위해 어디까지 약속을 고정하고, 사이클을 견디기 위해 어디서부터 여지를 남길 것인가다. 그 경계를 정교하게 긋는 일이다. 삼성은 이번에 인재와 평화를 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10년짜리 약속이 호황의 선물에서 불황의 족쇄로 바뀌지 않게 관리하는 것, 그것이 잉크가 마른 지금부터 시작되는 진짜 숙제다. 성과급 협상은 끝났지만, 진짜 시험지는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그날 청구서로 날아온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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