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석유제품 재고, 2004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
호르무즈해협 운항 제한 장기화로 미국산 원유 수출 사상 최대
미국 내 원유 재고 감소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
전략비축유까지 빠르게 줄어들면서 에너지 시장 완충 장치 약화
종전 협상 지연될 경우 유가 급등 위험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는 또 다른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운항 제한이 4개월째 이어지면서 미국의 원유 및 석유제품 재고가 2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했고 뉴욕증시는 급락했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종전 협상보다도 미국의 빠른 재고 고갈이 더 위험한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석유 창고' 22년래 최저
3일(현지시간)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미국의 전체 원유 및 석유제품 재고는 15억7000만배럴로 집계됐다. 일주일 만에 1060만배럴 감소한 규모로, 2004년 5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상업용 원유 재고는 4억3370만배럴로 1주일 새 800만배럴 감소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400만배럴 감소를 2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전략비축유(SPR) 감소 속도도 심상치 않다. 현재 비축량은 3억5712만배럴로 2024년 1월 이후 가장 적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이란전 발발 이후 약 5800만배럴을 시장에 공급했다. 전체 비축유의 약 14%가 전쟁 이후 방출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방출 속도가 유지될 경우 전략비축유는 조만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최저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재고 감소의 배경에는 수출 급증이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불안해지자 아시아와 유럽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섰다. 이에 따라 미국의 원유 수출은 지난 5월 하루 평균 560만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치였던 4월의 520만배럴도 넘어섰다.
에너지 공급 우려는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란은 최근 미국의 군사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쿠웨이트 국제공항과 역내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 미국도 이에 대응해 이란 유조선과 군사시설을 타격하면서 양측의 무력 공방이 재개됐다.
종전 협상이 답보 상태를 보이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1.9% 상승한 배럴당 97.81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WTI는 2.4% 오른 배럴당 96.02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유가가 다시 100달러 선을 돌파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때 배럴당 20달러 가까이 벌어졌던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가격 차도 크게 줄었다. 미국산 원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날 기준 가격 차는 배럴당 1.79달러까지 좁혀졌다.
유가 100달러 눈앞…주식·채권도 흔들
뉴욕증시도 충격을 받았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620p 넘게 하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9거래일 연속 상승 행진을 마감했다. 인공지능(AI) 대표주인 엔비디아도 3% 넘게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상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한때 4.5%를 웃돌았고 30년물 금리도 5% 선을 넘나들었다.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금리를 다시 인상할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업계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닐 채프먼 엑손모빌 수석부사장은 최근 "글로벌 원유 재고가 향후 2~3주 내 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그 시점이 되면 가격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호르무즈해협 운항 제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한 누적 공급 공백이 10억배럴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종전 양해각서(MOU)가 이르면 이번 주말께 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협상 문안보다 실제 공급 상황을 더 주시하는 분위기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중동 리스크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월가의 우려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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