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출금리가 0.25%p 오르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 부담은 3조2000억원(1인당 16만3000원),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1조8000억원(1인당 55만원)이 각각 늘어난다. 0.5%p 상승하면 이자 부담도 두 배가 된다. 대출가계나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고금리를 감수하며 '영끌'로 집을 사고, '빚투'로 주식을 산 이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70조2728억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3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코스피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36조원대를 넘는다.
몇해 전 집을 늘려 이사하면서 금리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지인은 최근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그사이 이자가 껑충 뛰었다. 내야 할 원리금이 지금도 만만치 않다. 금리가 더 오르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술잔 너머로 전해진다. 최근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 상단은 7%를 돌파했고, 하반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8%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2%)를 훌쩍 뛰어넘었다. 국가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4월(2.6%)보다 상승률이 0.5%p 높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돈 것은 202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고유가로 가뜩이나 힘든 마당에 원·달러 환율마저 달러당 150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아 고물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3%대에 머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겉으로는 우리 경제가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0.6%p 상향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중에서는 3.0%를 제시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이 산업 전반과 가계의 체감경기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특정 업종의 호황이 낙수효과로 확산되기보다 성과급 확대와 비용 상승을 통해 물가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제는 물가를 잡으려니 금리 상승과 소비 둔화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질까 걱정되고, 그냥 내버려 두자니 자칫 물가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래도 저래도 난감한 형국이다. 기업들 역시 고유가·고환율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마저 오르면 금융비용 증가까지 겹쳐 '삼중고'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정책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고 있다. 중동 정세가 진정될지 확전될지,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뛰어오를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물가 불안을 이유로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글로벌 통화정책의 긴축 압력이 다시 커지는 상황이다.
그간은 중동 사태 등으로 인한 경기 둔화를 우려해 각종 지원금을 지급하고, 경기 부양에 정책의 중심추를 뒀다. 그러나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대외 변수가 물가를 자극하고, 통화정책의 여지를 좁히는 상황에서 국내 정책도 더 이상 부양 일변도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당분간은 선거가 없으니 정치적으로 고려할 상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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