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호국원서 600여명 참석
도솔산 전사자 딸 편지 낭독
보훈문화 확산 유공자 표창 수여
4대 해병 가문·보훈가족 공로 기려
미귀환 참전용사 유가족 시료 채취 당부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오늘의 평화와 도민의 삶으로 되새기는 추념의 시간이 제주에서 마련됐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가족의 기억으로 견뎌온 보훈가족의 삶을 함께 예우하고,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참전용사를 찾는 과제도 다시 제기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6일 오전 국립제주호국원 현충광장에서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했다.
올해 추념식은 '그들의 바람, 오늘의 우리를 스치다'를 주제로 열렸다.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선열들의 염원과 희생정신을 오늘의 제주가 기억하고 미래 세대와 함께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았다.
추념식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양덕순 제주대학교 총장, 최은희 제주도교육청 행정부교육감을 비롯해 보훈가족과 도민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오전 10시 제주 전역에 울린 사이렌에 맞춰 묵념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렸다.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순서는 6·25전쟁 전사자 유족의 편지 낭독이었다. 도솔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 임동원 병장의 딸 임선영씨(76)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임씨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나의 아버지, 1951년 핏덩이 같은 나를 두고 조국의 부름에 발길을 돌리셨다"며 "아버지 없는 세상이 야속해 원망 어린 눈물로 숱한 세월을 보냈지만 조국의 방패가 된 아버지가 이제는 원망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는 끝내 남기지 못한 가족사진을 우리 집에 가족이 늘 때마다 한 장 한 장 찍었다"며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켜낸 이 평화로운 땅에서 나는 가족을 이뤘고, 아버지가 청춘을 바쳐 완성해 준 수많은 가족사진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한 번도 눈에 담아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 우리의 뒤늦은 가족사진을 올려드린다"며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전쟁이 남긴 가족의 빈자리와 오늘의 평화가 이어진 시간을 함께 되새겼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전하고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한 유공자 표창도 수여됐다. 해병대 최초 '4대 해병 가문'의 계보를 잇는 김준영 해병은 조부와 부친에 이어 해병대에 복무하며 국가 안보를 실천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
독립유공자와 6·25참전유공자의 유족으로서 보훈가족의 자긍심을 지켜온 김임숙씨와 방순경씨에게도 각각 표창이 수여됐다. 보훈은 국가유공자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는다. 긴 세월 가족의 상실과 생활의 무게를 견뎌온 유족의 삶까지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추념사에서 "오늘의 평화는 이름 없는 헌신 위에 세워졌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과 긴 세월 아픔을 견딘 유가족의 삶까지 제대로 예우하고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도솔산 전투에서 전사한 고 임동원 병장과 제주 출신 호국 군마 레클리스를 언급하며 희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나라를 위한 희생을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역사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귀환 참전용사 유해 확인도 당부했다. 오 지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주 청년 중 아직 2000여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올해 유가족 찾기 집중 기간에 384명의 시료를 채취한 만큼 유전자 시료 채취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현충일 추념식은 국가 의례이지만, 제주에서는 지역의 기억과도 맞닿아 있다. 제주 청년들의 참전과 희생, 남겨진 가족의 삶, 호국원과 4·3의 기억이 함께 놓여 있다.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행사를 넘어 유해 발굴과 유가족 지원, 미래세대 교육으로 이어질 때 도민 생활 속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제주도는 현충일을 계기로 보훈문화 확산과 국가유공자 예우, 미귀환 참전용사 유가족 찾기 사업에 대한 도민 참여를 넓혀 나갈 방침이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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