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한·일 전문가 지상대담
하나씩 순서 밟아 단순하게 시작을
日이 어떤 나라가 될지 전망 나와야
한일FTA 체결·CPTPP 가입 통해
제도적으로 경제협력 확대해 가야
역사 갈등·경제협력 분리가 출발선
전략산업 공동펀드·공급망 구축을
양국 국민이 이익을 살감하게 될 때
국제사회서 경제블록으로 인정받아
"한일이 '생존의 문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치느냐에 따라 2040년, 2050년 양국의 미래 운명 역시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국교정상화 60년을 거쳐 양국은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60년의 출발점에 섰다. 미래 비전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첨단산업의 부상과 미중 전략 경쟁 심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문제, 그로 인한 내수시장 축소 등 양국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 경제계를 대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6조달러 규모'의 한일 경제공동체, 내지는 한일경제연대를 통해 세계 4위 경제권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한국과 일본, 외교·경제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60년을 향한 미래 비전, 한일 경제공동체'를 주제로 지상 좌담회를 개최했다. 주일대사를 지낸 강창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일본 내각관방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을 총괄한 시부야 가즈히사 일본 간사이가쿠인대 교수, 사공목 산업연구원 명예 펠로우, 구노 아라타 일본 아세아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 상대 학장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이 양국 협력 관계의 첫 도전 무대가 될 것"이라며 "점진적이면서도, 현실적 방법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로드맵을 구축해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재계를 대표해 최태원 회장이 한일 경제공동체론을 제안했는데.
▲시부야 가즈히사=일단 목적성이 명확해 보인다. 한일 파트너십 심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발언권을 높이고 경제질서 안정화에 기여하자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최 회장의 구상을 높이 평가한다. 유럽연합(EU) 통합은 40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다. 한일경제권 통합 구상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강창일=대단히 큰 프레임이다. 선언적으로 의미가 있다. 양국 경제관계를 공고화하자는 의견에는 찬성한다. 다만 용어 자체가 국경을 없애자는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주권 행사와 연결된다.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양국 경제협력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현실적이다.
▲이지평=실리를 기반으로, '협력 축적사'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구노 아라타=최 회장의 문제 제기는 매우 중요하다. 목표점은 EU식 제도 설계가 아닌 기술유출, 공급망 취약성 등 위험에 대응하는 '한일 경제안보 공동체'에 둬야 할 것이다.
▲사공목=긴 타임 스케줄보다는 한일 FTA 체결, CPTPP 가입을 통해 경제협력을 제도적으로 확대해 가는 게 우선이다. 다만 용어 사용에 대한 고민과 공감대 확보가 필요해 보인다. 일본의 침략사 때문이다.
―향후 60년의 경제협력 로드맵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나.
▲강창일=경제협력 공고화를 위해 하나씩 순서를 밟아 단순하게 시작해야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지난 20여년간 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한일 FTA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단계를 거듭해 EU식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일본이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전망부터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자칫하면 용어로 인해 한일합방 아니냐는 식의 오해를 살 수가 있다. 유럽통합사는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화해, 이를 통한 신뢰구축이 출발점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암초가 남아있지 않나. 역사교과서,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제동원 문제 등이다. 물론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시부야 가즈히사=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해 포괄적 경제협력을 조기에 실현하는 것이다. 대립을 자동적으로 해결해주는 마법 같은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핵심은 갈등 관리다. EU도 그랬다.
▲구노 아라타=EU식 경제공동체라는 것을 목적화할 게 아니라, 당면한 정책과제에 대응하는 '기능적 협력'이 우선시돼야 한다.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체 과정이 좌초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FTA 체결이나 CPTPP 가입을 통한 상품·서비스 시장 통합은 충분히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제도적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핵심은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용훈=앞으로 10년이 관건이다. '관계 악화' '관계 회복'이라는 이 롤러코스터 같은 패턴부터 끊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협력이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 상황이 아닌, '제도와 구조'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신뢰는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이지평=한일 경제공동체 로드맵의 출발점은 '정치·역사 갈등과 경제협력의 분리'에 있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반도체·에너지·핵심광물 등 전략산업에서 공동 펀드·공동 공급망·공동 R&D체제를 우선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5년간 향후 중기전략으로는 CPTPP 가입, 그 후 한일 FTA 추진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안보 협정 등 제도적 협력체제를 마련해 2019년과 아베 신조 정권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같은 갈등 재발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향적 자세와 점진적 제도화가 병행된다면 20년 안에는 '부분적 경제공동체' 수준의 출범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접근 가능한 산업 협력 분야는.
▲구노 아라타=반도체에 공감한다. 더불어 핵심 광물·에너지 공급망, 조선협력도 지목할 수 있다. 디지털 AI 분야 규범 형성, 제3국 공동진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은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2040년, 2050년 양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시부야 가즈히사=반도체, AI, 조선업 분야를 꼽고 싶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지속적 성장이 예상된다.
―협력이 단계적으로 이뤄진다면 향후 2040, 2050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양국의 위상은.
▲시부야 가즈히사='자유롭고 개방된 경제질서(FOIP·2016년 당시 아베 총리가 제안한 뒤로 일본의 외교정책 기조가 됨)'는 누군가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국제 공공재다. 미국에 이어 EU마저 그 역할을 저버린다면 이를 지켜나갈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 일본뿐일 수 있다. 이를 지켜나가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이지평=한일 경제공동체를 구현한다면 양국이 제2의 내수 시장을 공유하는 한편 동북아 경제질서를 미중 양극체제에서 삼극 구조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양국이 아세안까지 포함하는 AU의 핵심 축으로 자리하게 된다면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권으로서 국제규범 설정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용훈=양국 국민이 이익으로 실감하게 될 때 '한일'이라는 브랜드가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경제블록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서혜진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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