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 올린 색들 사이로 더 깊어지는 작품 서사 [이현희의 아트톡]
천경자 '시장'
천경자의 회화는 삶의 경험과 내면의 감정 변화에 따라 화면 구성과 이미지 밀도를 달리하며 전개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세밀한 묘사와 담채에서 벗어나 문학적 상상력과 환상성이 두드러져 짙은 농도의 채색과 장식성의 심화를 보여주었는데, 청색조의 사용이 돋보이는 '시장'(1964)에서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여름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수차례 물감을 겹쳐 올려 만든 다채로운 색의 층위와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속도감 있는 붓질이 환상성을 극대화한다.
왼편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지만 시선을 겹치지 않는 남녀와 시장 한편에서 진열된 물품들 사이로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 그리고 이들의 앞에 놓인 정갈하게 펼쳐진 두 개의 붉고 푸른 우산이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특히 조용하게 시선을 잡아 끄는 두 개의 우산은 작가에게 있어 삶의 궤적과 내면의 심리를 투영하는 상징적인 소재로,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 내지는 자신의 결핍을 감싸줄 수 있는 존재 등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다. '두 사람'(1962), '비 개인 뒤'(1962), '석양머리'(1964) 등의 작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 및 배치되어 작가의 심리와 제작의도를 엿보게 하는 시각적 장치로 읽힌다.
작품명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사물들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어 열린 해석의 여지를 주는 '시장'은 작가의 의도를 궁금케 하는데, 제작시기와 맞물린 활동에서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작품을 제작했던 해에 소설가 박경리가 동아일보에 1964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연재했던 '파시(波市)'의 삽화를 그려주었다. 소설은 통영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끝자락에서의 피난살이 속 희망과 도피, 사랑과 탐욕을 그려내고 있어 민초들의 생명력과 향토 멜로, 여성의 위치가 이 시기 천경자의 작품 제작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