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동일칼럼

"늘어나는 본가살이 청년… 그들 게으름 아닌 사회구조 문제" [fn 인사이트]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대담
취업난·주거난이 만들어낸'전업자녀'
"제 직업은 자녀입니다" 시대변화의 산물
자녀 불안정한 취업보다 평생 業 찾길 바라
전업자녀를 무직청년으로만 볼 필요없어
부모에 일방적 기대는 캥거루族과 달라
부모는 자산과 소득을 자녀와 공유하고
자녀는 집안일·간병·생활지원 등을 전담
가족 내부서 '필요'를 나누는 분업 구조
독립분가 의지 있으나 걸림돌 훨씬 많아
부모 '교육 투자→ 계층 상승' 공식 깨져
간병·돌봄형 전업자녀는 계속 확산될 것
일자리·주거·자산이전 정책 대응책 필요

저성장과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고령 부모의 돌봄 수요가 맞물리면서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 자녀까지 가족 안에 머물거나 다시 들어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처럼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캥거루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는 자산과 소득을 공유하고, 자녀는 집안일·간병·생활 지원 등 가족 안에서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가족 내부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필요를 교환하는 새로운 분업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과의 대담에서 이를 '전업 자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전 교수는 전업 자녀에 대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얹혀사는 부정적 의미의 캥거루족과는 다르며, 부모의 필요와 자녀의 필요가 맞물린 쌍방향 관계라고 설명했다.

고용과 주거라는 독립 분가의 두 날개가 약해진 상황에서 전업 자녀를 개인의 나태로만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그는 청년의 독립을 요구하기 전에 일자리, 주거, 세대 간 자산 이전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저성장,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고령 부모의 돌봄 수요가 맞물리며 나타난 '전업 자녀'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전 교수는 전업 자녀가 과거의 캥거루족과 달리 부모와 자녀의 필요가 교환되는 새로운 가족 내 분업 구조라고 진단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저성장,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고령 부모의 돌봄 수요가 맞물리며 나타난 '전업 자녀'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전 교수는 전업 자녀가 과거의 캥거루족과 달리 부모와 자녀의 필요가 교환되는 새로운 가족 내 분업 구조라고 진단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전업 자녀'라는 개념이 낯설다. 무엇을 뜻하나.

▲직업이 자녀인 상태를 뜻한다.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녀입니다'라고 답하는 셈이다. 다소 도발적인 표현이지만 시대 변화가 만든 새로운 개념이다. 과거에는 전업주부라는 말이 있었다. 전업 자녀도 가족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그 역할이 생활 기반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핵심은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의 소득이나 자산을 일정 부분 공유받는 대신 자녀도 가족 안에서 집안일, 돌봄, 간병, 생활 지원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계약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내부에서 역할과 보상이 교환되는 구조다.

―기존의 캥거루족과는 어떻게 다른가.

▲캥거루족은 대체로 부모의 자산이나 소득을 자녀가 일방적으로 받는 구조로 이해됐다. 독립해야 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부모 집에 머물며 소비만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도 강했다. 그래서 사회적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전업 자녀는 다르다. 부모의 필요와 자녀의 필요가 맞물린다. 부모는 노후 돌봄이나 생활 지원이 필요하고, 자녀는 고용과 주거 장벽 때문에 독립이 쉽지 않다. 서로의 필요가 가족 안에서 교환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곁에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생활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나.

▲독립 분가를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본인의 호구지책, 즉 일자리다. 다른 하나는 주거다. 고용과 주거가 독립 분가의 양 날개인데 이 두 개가 모두 약해졌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생애 경로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작동했다. 지금은 첫 관문인 취업부터 어렵다. 4학년 때 취업해 바로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줄고, 졸업을 유예하면서 5학년으로 남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늘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기간도 1~2년, 길게는 2~3년까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됐다. 문제는 그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4학년, 5학년, 취업준비생이라는 단계를 지나도 사회 진입이 안 되면 결국 '직업이 자녀'인 상태가 된다.

―원인은 무엇인가. 청년 개인의 의지 부족인가.

▲대부분의 전업 자녀는 독립 분가를 위한 의지와 노력, 능력이 있다.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뚫기 어려운 장벽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제는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한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기업은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한다. 그런데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출발선부터 딜레마다. 늦게 취업해도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약하다. 사회 진입 연령은 늦어지는데 안정적 직장에서 퇴장하는 시점은 빨라지고 있다. 부모가 30년 가까이 자녀 교육과 준비에 투자해도, 자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0년도 안 될 수 있다. 부모 세대가 믿어온 교육 투자와 계층 상승의 공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부모 세대의 인식도 바뀌었나.

▲전업 자녀는 자녀만의 선택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지금의 중년 부모 세대는 고성장과 저성장의 경계를 모두 경험했다.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신화를 믿고 자랐지만, 동시에 그 신화가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도 봤다. 그래서 무조건 취업만 강요하지 않는다. 취업이 정말 자녀의 미래를 보장하는지 의심한다. 자녀가 불안정한 일자리에 급히 들어가는 것보다, 부모가 벌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하면서 자녀에게 맞는 업을 찾도록 돕겠다는 태도도 나타난다. 취업보다 평생의 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부모가 늘었다. 조금 더 지체되더라도 자녀의 성향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쉬었음' 청년 통계와도 연결되는 문제인가.

▲국가가 '쉬었음'이라는 통계를 주기적으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국가 통계는 특정 시대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극소수였거나 별도 통계로 잡을 필요가 없던 현상이 이제 정책의 근거로 삼아야 할 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20대의 쉬었음 인구가 많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취업 준비, 진학 준비, 경력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와 40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는 일시적 취업 준비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통계에 잡히는 숫자는 일부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전업 자녀의 성격을 갖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들을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기력한 집단으로 볼 수 없다.

―전업 자녀에도 차이가 있나.

▲우선 취업 유예형이 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부모 집에 머물며 준비하는 경우다.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독립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온 재취업 준비형도 있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중도 퇴직 이후 안정적 일자리로 다시 진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유형도 늘 수 있다. 간병·돌봄형도 중요하다. 노부모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시장에서 간병 서비스를 구매하기 어렵거나 비용 부담이 크면 자녀가 직접 돌봄을 맡게 된다. 이 경우 자녀는 부모의 생활 기반을 공유하고, 부모는 자녀의 돌봄 기능을 받는다. 다만 전업 자녀를 무직 청년이나 미혼 자녀로만 볼 필요는 없다. 나이가 많고, 고학력이고, 분가했고, 직업이 있는 자녀도 부모의 자산이나 돌봄 기능에 기대는 경우가 있다.

―고령화와 간병 부담이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복지가 확대됐다고 하지만 노후에서 가장 큰 부담은 여전히 간병이다. 시장에서 제공되는 간병 서비스는 비용이 높고 만족도는 낮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의료와 간병을 외부에 맡기기보다 자녀가 직접 맡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족 안으로 돌봄 기능이 다시 들어온다. 부모는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녀도 부모를 돌보는 대신 부모의 자산과 소득을 공유한다. 제도 변화가 없다면 간병·돌봄형 전업 자녀는 계속 확산될 수 있다.

―정책 대응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나.

▲첫째는 일자리다. 청년이 독립하려면 안정적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생산가능인구도 함께 줄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청년이 일자리를 골라 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제는 일자리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산업 전략과 고용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는 주거다. 취업을 해도 살 집을 구할 수 없다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4인 가족 중심 주택 공급에서 벗어나 1인 가구, 근거리 가족, 세대 교류형 주거, 공동체 주거 등 다양한 모델을 정책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셋째는 자산 이전이다. 청년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려면 부모 세대에 묶인 자산이 아래 세대로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상속이 사망 이후에야 이뤄지는 구조만으로는 늦다. 증여와 상속 구조, 주거 지원, 창업 지원, 직업훈련 등을 통해 세대 간 자산 이동을 어떻게 설계할지 논의해야 한다.

―전업 자녀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도덕적으로만 비난해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전업 자녀는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저성장, 고용 불안, 주거비, 고령화, 간병 부담, 가족 기능 약화가 동시에 만든 결과다. 현상은 늘 변화 속에서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 현상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전업 자녀는 불편한 현상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고용·주거·복지·가족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청년에게 독립하라고 말하기 전에 독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업 자녀 현상이 사회문제로 굳어지지 않게 하려면 청년이 일하고, 살 집을 구하고,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정리=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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