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주민들이 반긴 영덕·기장 원전, 늦은 만큼 더 속도를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24년 만에 신규 원전 부지 확정돼
SMR도 첫발, 에너지 판도 바꾸길

18일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에 원전 유치 찬성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 마을은 지난해 3월 대형 산불로 많은 집이 타는 등 큰 피해가 났다. /사진-연합뉴스
18일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에 원전 유치 찬성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 마을은 지난해 3월 대형 산불로 많은 집이 타는 등 큰 피해가 났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원전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대형 원전 후보지로 경북 영덕을,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후보지로 부산 기장을 확정했다. 영덕의 대형 원전 2기는 2037년과 2038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첫 SMR은 기장에서 2035년 상업운전이 시작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신규 원전 부지가 결정된 것은 2002년 신한울 원전 이후 24년 만이다. 탈원전 논란과 정책 혼선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가 복원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전력은 산업의 공기와 같다. 부족하면 데이터센터가 멈추고, 비싸면 공장이 떠난다. 공급이 불안하면 투자도 없다. 향후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경고는 차고 넘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소비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거의 두 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총괄위원회는 2040년 국내 연중 최대 전력수요가 138.2GW에 이르러 2025년보다 4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시대의 전력난은 한국 산업의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세계가 전력 확보를 위해 앞다퉈 뛰는 동안 우리는 원전정책을 정권마다 뒤집고, 계획을 미루고, 생태계를 흔들었다. 원전 기자재 업체들은 일감을 잃었고, 전문인력은 현장을 떠났다. 공급망 체력은 크게 약화됐다. 지금 신규 원전 부지가 확정됐다고 해서 곧바로 전력난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완공은 10년 뒤에 있는 일이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늦은 만큼 공사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현장을 독려해야 할 것이다. 원전 확충계획도 서둘러야 한다. 원자력학회는 앞서 추가 대형 원전 2~4기, SMR 2기를 12차 전기본에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추가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첫 SMR에 거는 기대도 크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건설기간이 짧고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수요처 인근에 건설할 수 있어 송전망 구축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 경쟁이 초기 단계인 만큼 한국이 실제 건설과 운영 경험을 먼저 축적한다면 새로운 수출동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런 만큼 부산 기장의 첫 SMR은 단순한 실증사업이 아니라 한국형 SMR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세계에 보여주는 무대가 돼야 한다.

송전망 확충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내 곳곳에서 송전망 건설 지연이 전력 공급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있어야 원전도, 재생에너지도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확인된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와 달리 원전 유치를 환영하는 지역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영덕과 기장 모두 주민 수용성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용했다.

지역 주민들이 원전을 무조건 위험시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와 일자리, 지원금, 산업 기반 확충의 기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합리적 판단이다. 더 이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정책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속도와 실행력을 높여 에너지 대변혁의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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