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6.25 전쟁 후 남한 전력의 83%, 지금은 0.07%…화천수력 82년의 기록
강제징용·6·25 전쟁·전후 전력 버팀목
129MW 시대 홀로 버텼던 '전력 젖줄
【화천(강원)=이유범 기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북위 38도선 이북, 해발 163m 수위를 유지하는 파로호의 물줄기가 댐 벽을 타고 내려앉는 곳에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가 서 있다. 높이 81.5m, 길이 435m. 1944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화천댐이다. 올해로 준공 82년째다. 댐 표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기관총탄과 소총탄 자국이 콘크리트에 새겨져 있다. 1951년 4월, 북한군과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던 이 댐을 수복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여기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방문한 화천댐 정면의 초석에는 일왕의 연호 '소화(昭和) 19년'이 깨진 채로 있었다. 해방 직후, 이 댐 공사에서 강제 징용으로 1000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댐 이름도 일제가 붙인 '대명제'였다. 주민들은 '대붕제'를 건의했다. 한 번 날갯짓으로 9만리를 난다는 전설의 새 붕새(대붕)에서 따온 이름으로, 파로호의 형상이 붕새가 내려앉은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인근에 '구만리' 지명이 남아 있는 이유다. 초석은 6·25 때 행방불명됐다가 1987년 평화의 댐 공사 중 수위를 낮추는 과정에 댐 하류 약 150m 지점에서 발견돼 제자리를 되찾았다.
1951년, 댐을 점령한 북한군과 중공군은 수문 16개를 이용한 수공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군은 비행기 폭격으로 수문을 파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비행기가 어뢰 두 발을 투하해 수문을 깨뜨렸다. 육상 작전에서 어뢰로 댐 수문을 파괴한 것은 전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성창현 화천수력발전 수자원환경팀장은 "그 부대는 지금도 자신들을 '댐 버스터(Dam Buster)'라고 부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켈로(KLO) 첩보 부대도 따로 공을 세웠다. 북한군이 벌목한 나무로 비행기·전차 모형을 만들어 위장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해 총공격의 길을 열었다. 댐 내부 유지보수용 터널 '검사랑'에는 전쟁 당시 중공군 거의 만 명이 숨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수복 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이 호수를 '파로호(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 명명했다. 한중 국교 정상화 이후 중국이 명칭 변경을 요청했지만 화천군은 거부했다.
전쟁 직후 남한의 전체 발전 설비 용량은 129MW에 불과했다. 대형 발전소 대부분이 북한 지역에 집중돼 있던 일제강점기 전력 인프라의 유산이었다. 이 빈약한 기반 위에서 전쟁 직후 화천수력의 108MW는 남한 전체 발전 설비의 83%를 홀로 떠받쳤다.
발전소 수복이 군사 작전인 동시에 국가 전력 자립의 문제였던 이유다.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발전 설비 용량은 153GW로, 전후 대비 약 1200배 늘었다. 이 거대한 전력망 안에서 화천수력의 비중은 이제 0.07%에 불과하다. 원자력·화력·신재생에너지까지 더해진 오늘날의 전력 체계 안에서 나라의 불을 혼자 밝히던 발전소는 이제 전력망의 미세한 점 하나가 됐다. 그 위상의 변화는 그 자체로 한국 전력 산업 70년 성장의 압축판으로 느껴졌다.
발전소를 찾았을 때 내부는 조용했다. 1호기부터 4호기까지 늘어선 발전기 가운데 3호기가 현대화 사업 중으로 올 12월 31일 준공 예정이다. 4호기는 2020년 이미 현대화를 마쳤다.
성 팀장은 "현대화를 하면 용량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발전 효율이 95%에서 98% 정도로 올라간다"며 "1호기와 2호기도 현대화 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1944년에 지어진 화천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전쟁과 강점, 수복과 재건의 세월을 견뎌낸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아직도 현역이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