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SNS 사진 무시…하반기 '대화 모멘텀' 차단한 김정은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상반기 주요 정책을 논의·의결하는 전원회의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 정책을 지속할 방침을 재확인하고,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정당화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종전 분위기 속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시선이 '북한'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올해 하반기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는데, 이같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는 해석에 24일 무게가 실린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강경 노선이 미국·한국과 일말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혹시 모를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제스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22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9기 2차 전원회의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한 우리 당의 대적 투쟁 원칙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전원회의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또한 김 총비서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을 위한 한미 간 협력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핵 개발 정책은 외부의 위협에 맞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당화 논리를 폈다. 그는 "핵무력을 끊임없이 확대 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예측불가능한 국제 군사정치 형세에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길"이라며 "유력한 국방 자산들을 더욱 늘려나가기 위한 사업을 계속 멈춤없이, 강력히 실행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맞닿아있는 '남부 국경'을 요새화하는 단절 작업을 철저히 완료하라고 지시하고, 1만 톤(t)급 '전략유도탄 순양함'이라는 새 무기체계의 건조 사업 추진을 주문하기도 했다.
최근 한미 양국 정상이 북한을 향해 '대화 제스처'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대남 적대 정책'과 '핵무력 강화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국면이 바뀔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특히 북한이 6월 말에 개최하는 노동당 전원회의는 상반기 정책 성과를 결산하고 하반기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같은 기조는 적어도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정상 '대화 제스처' 직후 나온 강경 노선…"전략적 무관심일 가능성도"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 계정에 김정은 당 총비서와 자신이 나란히 걷는 사진을 게재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였던 지난 2018년 6월 12일 두 사람이 회담장인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을 앞둔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협상 상대는 북한'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론 전환용으로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대규모 이벤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남북 관계가 전례없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쳐 온 정부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무언의 메시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인 것이 사실이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SNS 게시글을 올린 배경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기해서 조용히 김 총비서의 친서가 도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각의 해석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비서로부터 친서를 받고, 이에 대한 응답 차원으로 글을 올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어쨌든 다시 북미 접촉과 대화가 가동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얼마 전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될 때가 됐다"라고 말하며 북미 대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도 북핵 문제의 '단계적 해결법'을 언급하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다.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귀국 직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그만큼 한미 정상이 북한과 만나 협상하고 싶은 의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읽혔다.
그러나 김 총비서는 이에 대한 응답은 하지 않은 채,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오히려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였다. 한미 간 협력이 한반도 안보에 큰 위협이 되며, 반미 성향의 우방국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통해 북한이 '진영'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강 대 강' 노선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음을 시사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당분간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대화 기류를 형성하기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대결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는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올 들어 김 총비서와 북한 당국이 핵보유국 지위를 수시로 부각하면서 적극적으로 대미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엔 나름의 포석을 두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향후 북미 간 핵 협상이 재개될 경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무관심'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 총비서는 지난 2월 노동당 9차 대회에선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 정책을 철회하고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하면 언제든 대화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한은 북미 협상이 재개될 경우 비핵화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밝혀왔다"며 "이번 전원회의 메시지 역시 북미 정상회담을 핵군축 협상 프레임으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