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월드모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월드모델=피지컬 AI '생각의 그릇'
미래시뮬레이션,시행착오 최소화
스스로 데이터 모아 학습하며 진화
인관의 뇌는 직관·예측인지 탁월
세상과 상호작용 하며 의사결정
월드모델 의존하면 후회할 세상
인공지능(AI)이 로봇의 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월드모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월드모델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학습해 세상의 구조와 인과관계를 담는 피지컬 AI의 생각의 그릇이다.
월드모델 이야기는 백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 행동심리학자인 에드워드 톨먼의 1930년 논문에서는 미로를 경험한 쥐가 목표가 생겼을 때 더 빠르게 배운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에 대한 모델을 학습에 활용한다는 '인지 지도' 가설을 세웠고, 이후 의사결정과 학습의 뇌과학 연구의 뿌리가 되었다. 제어공학에서는 1970년대부터 모델 예측 제어라는 기술을 통해 시간지연 제어 시스템의 성능을 높여 왔는데 이를 작은 월드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AI연구소를 설립한 마빈 민스키는 1986년 '마음의 사회'라는 책에서 뇌가 외부 세계를 점진적으로 이해해 나가는 계층적 월드모델 개념을 제안했다. 곳곳에서 싹을 틔운 월드모델은 반도체라는 밭에서 덩치를 키우고, 피지컬 AI라는 제철을 만났다. 돌아오는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수확하게 될까.
첫째, AI의 인지·추론·전략 수립 능력이 향상된다. 월드모델을 가진 로봇은 다양한 관점을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미래를 시뮬레이션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짐을 들고 경사로를 내려가기 전에 굴러떨어지는 상상을 하여 무게중심을 조정하고, 유리문이 잘 깨진다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움직이며, 바둑에서는 '이런 수를 둔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까' 상상하여 행동하기 전에 최적의 전략을 세운다. 시장의 역학관계를 담은 월드모델을 가진 AI는 다음 분기의 시장 변화를 상상하며 사업 방향을 피버팅(전환)한다.
둘째,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모아 학습하며 진화한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모으고 정제하여 AI를 학습시키고 월드모델을 구축했다면, 이제는 그 월드모델을 탑재한 로봇이 실제 세계에서 스스로 데이터를 모아 인간에게 제공하거나 자기 자신을 파인튜닝(미세조정)하는 세상이 열린다. 실험 분야, 특히 신소재나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기대된다. 인간이 AI에게 제공한 월드모델을 이용해 새로운 발견을 하고, 확장된 월드모델을 인간에게 돌려주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스스로 진화하는 월드모델의 선순환 속에서는 AI가 창의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러한 AI의 월드모델은 우리 머릿속 월드모델과 비슷할까? 같은 경험을 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지 않듯, 다르다. AI는 파운데이션 모델로 불리는 통합형 월드모델을 추구하는 반면, 뇌의 월드모델은 적어도 네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직관이다. 물리적 세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본능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에 필요하다. 그다음은 의사결정 모델이다. 이 역시 세상의 구조를 직접 활용하진 않지만 세상과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결과를 예측하는 간접적인 월드모델이다. 뇌의 피질하 영역 속에서 우리의 움직임과 습관을 만들어낸다, 셋째는 예측인지 모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해마 시스템 속 격자세포와 장소세포는 현재 상황뿐만 아니라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을 통한 결과 예측에도 관여한다. 기억을 재생하지 않는 의사결정 모델보다는 느리지만 기억세포가 주변 환경의 구조를 표상하므로 작지만 정교한 월드모델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전두엽의 인지 모델이다. 이 뇌 영역은 외부 세상의 구조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고, 사건 전개의 상상에 직접 관여한다. 할 일이 많아 가장 느리지만 가장 정교하다. 뇌는 매 순간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 피상적이지만 빠르고, 때로는 느리지만 정교한 월드모델을 만들어 낸다.
종합해보면 AI의 월드모델은 뇌와 다르다. 지금 인간이 가장 빠르게 퇴보하는 길은 AI가 던져주는 지식의 조각들로 자신의 월드모델을 채우는 것이다. AI가 하사하는 영상과 젠슨 황의 내한공연에 도파민 터지고, 바이브 코딩과 하네스 엔지니어링 결과물을 공유하고, AI로 만든 자료를 발표하는 자신에게 취해본 적이 있는가. 오늘 AI 음주를 위해 지불한 '토큰'은 내일 사라질 내 월드모델의 '몸값'이다. 휴먼 월드모델이라는 주식이 있다면 지금이 공매도 타이밍이다.
AI 월드모델에 대한 열정과 인간 가치 상실이라는 냉정함이 교차한다. 바보 같지만, 미래의 내 머릿속에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 능력을 가진 월드모델조차 남아있지 않을 테니, 기분만큼은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안해본다.
이상완 KAIST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