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칼럼] 공공조달 개혁의 성공 조건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강한 중력장 속에서 시간이 지구와 다르게 흐르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항상 똑같이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쉽게 보여준 장면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도 때로는 상대적인 것 같다.
지금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이후 변화의 속도는 우리 예상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기업의 생존전략과 정부의 작동방식도 원점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변화의 시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속도와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변화와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레드 퀸(Red Queen) 효과를 가슴에 새겨야 할 시기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공공조달도 전통적 역할에 머물 수는 없다. 종전에는 공공조달이 정부가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때 필요한 물품, 서비스, 시설물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조달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지금은 국가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수단이 돼야 한다. 연간 225조원에 달하는 공공구매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1년 조달청이 추진해 온 공공조달 개혁도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조달청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혁신제품을 발굴하고, 이들 제품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구매해 왔다. 평균적으로 조달청이 처음 시범구매한 금액의 6배 규모의 판매실적을 보였으며, 당초 시범구매 금액의 28배 규모 수출에 성공한 사례도 나타났다. 또한 유망한 AI 제품과 서비스가 공공조달시장에 쉽게 진입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췄다. 납품실적 요건을 폐지하고, 평가와 서류를 면제할 뿐만 아니라 가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구매절차를 간소화해서 공공기관들이 더 많은 AI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 주도 균형성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올해 경기와 전북을 시작으로 지방정부가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게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조달 자율화의 첫걸음을 뗐다. 비수도권 기업이 좀 더 많이 수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비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인구감소지역에 소재한 기업 등에 가점을 부여하고, 실질적으로 비수도권 기업 간에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게 된다.
공공조달의 기본은 다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공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계약을 이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입찰에 참여해서 낙찰받고, 실제 계약 이행은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조달청은 낙찰예정자를 대상으로 실지조사를 해서 부적격자를 낙찰에서 배제하고 있다. 상반기 시범조사를 거쳐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추진해 온 공공조달 개혁을 되짚어보니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조달청이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시간의 상대성'이다. 국민의 시계와 조달청의 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공조달 개혁의 성공은 결국 조달청이 국민의 시계에 맞춰 일할 때 가능할 것이다.
백승보 조달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