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열의 테크 오디세이] 사진기의 등장, 그리고 화가들의 위기
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14편
[파이낸셜뉴스]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사진술을 공식 발표하던 날,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오늘부로 회화는 죽었다." 그 탄식은 곧 유럽 예술계를 덮친 거대한 장례식의 개시 신호가 됐다.
당시 화가들의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은 귀족들의 얼굴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초상화였다. 솜털 하나, 눈동자의 반사광 하나까지 실물과 똑같이 베껴내는 능력이 화가의 급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그런데 붓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은판 상자가 등장해, 인간이 십수 년을 수련해도 도달하기 힘든 정확도로 단 몇 분 만에 대상을 베껴내기 시작했다. 가격은 헐값이었고 기계는 지치지 않았다. 대중은 화가들의 고결한 영혼보다 싸고 빠르며 자기 얼굴과 닮은 사진관의 은판을 선택했다. 파리의 초상화가들은 "영혼 없는 가짜", "비열한 기계적 도둑질"이라며 사진을 향해 퍼부었지만, 시장의 논리는 냉정했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회화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기라는 강력한 경쟁자 덕분에, 회화는 유사 이래 가장 자유롭고 실험적인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진기가 '대상을 똑같이 베끼는 고된 노동'을 대신 떠안자, 화가들은 수천 년간 자신들을 억눌러온 재현의 굴레에서 풀려났다. 기계가 겉모습을 완벽히 복제한다면, 인간은 기계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 결과 클로드 모네의 빛나는 수면이 태어났고, 반 고흐의 밤하늘은 소용돌이치며 숨 쉬기 시작했다. 피카소와 마티스가 보여준 혁명적 시선도 그렇게 탄생했다. 사진기는 회화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회화를 '기술'의 영역에서 끌어내어 '예술'이라는 고차원적 영역으로 밀어 올린 촉매였다.
오늘 우리는 19세기 파리의 화가들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정교한 복제 괴물 앞에 서 있다. 미드저니(Midjourney)와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은 프롬프트 한 줄로 어떤 화가의 화풍이든 순식간에 재현하고, 클로드(Claude)는 어떤 작가의 문체든 단 몇 초 만에 흉내 낸다.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는 텍스트·이미지·음악을 동시에 생성하며 창작의 경계 자체를 허문다. 게티이미지는 스테이블 디퓨전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독일 법원은 OpenAI의 학습 데이터 무단 사용에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이제 목소리까지 복제해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음원을 만들어낸다. "AI가 내 화풍을 훔쳤다", "내 문체가 학습 데이터로 쓰였다"는 창작자들의 분노가 미국과 유럽, 한국의 법정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거울 앞에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저항이 아니라 이동이다. AI 시대의 오리지널리티는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AI는 인류가 축적한 모든 화풍과 문장을 순식간에 재현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을 탄생시킨 작가의 결핍과 고뇌, 삶의 상처까지 복제해 내지는 못한다. 인공지능에게는 살아온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사람들은 사진이 영혼을 훔친다고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진은 화가들에게 이렇게 속삭인 셈이다. "똑같이 그리는 귀찮은 일은 내가 할 테니, 당신들은 이제 진짜 가치 있는 일을 하라." AI도 마찬가지다. 기계가 당신의 그림체와 문체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 고독하고 뜨거운 순간의 의지까지 훔치지는 못한다. 복제 불가능한 단 하나의 가치, '나'만의 관점을 세상에 내놓을 차례다. 사진기의 등장을 저주하며 캔버스를 찢어버린 화가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렌즈를 받아들여 새로운 시선을 구축한 이들은 사진의 아버지가 되었고,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추상의 영역으로 이동한 이는 피카소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