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상속세, 성공을 벌하는 세금
기업 존립 위협하는, 세계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
더 이상 금기시 말고 폐지 또는 개혁 논의 벌여야
상속세 개혁을 대한민국 생존 전략 차원 접근해야
'성공한 사람 벌하는 나라'여서는 미래 암담할 뿐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의 상속세 세율(稅率)은 최고 5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55%) 보다 명목상 낮지만, 세금 공제 범위가 좁아 실제 상속세 부담은 일본보다 크다고 한다.
문제는 세율의 높고 낮음만이 아니다. 상속(相續)은 단순히 부의 이전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일자리, 기술과 노하우의 이전 문제와 연결돼 있어서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높은 상속세 때문에 평생 키워온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리고, 기업의 존립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가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고 말한다.
자유경제원 대표를 지낸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를 비롯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승욱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신중섭 강원대 명예교수(윤리교육학), 황승연 경희대 명예교수(사회학) 등 5명의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 경제학, 철학, 사회학, 재정학, 법학의 관점에서 상속세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현행 상속세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 중 한 명인 황승연 교수의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현행 상속세는 가족과 기업을 해체하며 기업가 정신을 꺾고 장기 투자를 위축시킨다. 기업승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자본시장을 왜곡하며, 기업을 해외로 내몬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고, 주식을 팔면 경영권을 잃는다. 경영권을 잃으면 기업의 정체성과 장기 전략이 무너진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나라의 제도인가?"
그는 "모든 나라들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잃게 되는 경우를 배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세금 할인(割引)은 있어도 경영권 승계를 막기 위한 할증(割增)은 없다. 상속세 때문에 회사와 경영권을 빼앗기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는 단순한 세금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운명(運命)을 가르는 제도 문제라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상속세는 부자 몇 사람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 가족의 책임, 사유재산권, 자본 축적, 일자리, 국가 경쟁력까지 좌우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한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기업과 재산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일을 국가가 과도하게 가로막는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축적을 장려하거나 성공을 격려하는 사회가 아니라 성공을 벌하는 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런 이유에서 책의 제목을 '상속세, 성공을 벌하는 세금'이라고 붙였다. 열심히 일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을 세우고, 고용을 하고, 세금을 내고, 가족과 직원과 거래처를 책임져 온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국가가 요구하는 상속세가 절반을 넘는다면, 그것은 조세라기보다 징벌(懲罰)에 가깝다.
한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저자들은 잘 알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상속세 강화=정의(正義) 실현'이라는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치인 또한 정책안으로 채택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1961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상속세를 없앤 나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캐나다(1972년), 호주(1979년), 이스라엘(1980년), 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4년), 오스트리아·싱가포르(2008년), 뉴질랜드·리히텐슈타인(2011년), 노르웨이(2014년)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과 아시아와 대양주 등에 걸쳐 상속세 폐지가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위스 국민들은 최근 직접 투표를 통해 부자에게 50%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수퍼리치 과세안'을 78.3%로 부결시켰다. "부자들이 떠나면 국가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저자들은 "상속세는 결국 시민 의식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상속세를 과거 관념에 묶어둘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맞게 개혁할 것인가"하는 분기점 말이다. 상속세 개혁은 단순한 세제 변경 차원을 넘어 국가의 경제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이다. "상속세는 정의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기업은 떠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경제는 정체될 것이다."(198쪽)
"효율적인 제도들은 (인류 문명사에 쉼없이 작동해온) 상속 본능을 억누르거나 죄악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에너지를 장기적인 자본 축적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학문과 기술의 세대 간 계승이라는 사회적 생산성으로 전환해 냈다."(121쪽)
저자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反感)과 특혜 시비에 사로잡혀 상속세 논의 자체를 금기시해온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율의 상속세로 말미암아 기업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국가 경제 전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속세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부의 축적을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상속세 제도 개편으로) 그 부를 국내에 묶어두고 고용과 투자로 환원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실리적이다"(240쪽)
상속세의 철학적 기초(1편)를 시작으로 상속세의 세계사(2편), 상속세는 위헌인가?(3편), 상속세를 지방 정부에 넘기자(4편) 같은 깊이있고 도발적이며 참신한 주장을 통해 쏠쏠한 읽는 재미까지 맛볼 수 있는 책이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