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RE100 넘어 ‘언제’ 쓰나 따진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RE100은 이미 익숙한 이니셔티브가 됐다. 삼성·SK·LG 등 국내 대기업도 잇달아 참여를 선언했고 녹색프리미엄이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산에 분명한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이미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바로 24/7 CFE(무탄소 전력)다.
24/7 CFE의 핵심은 '총량'이 아니라 '시간'이다. RE100은 1년 동안 쓴 전력량만큼 재생에너지 실적을 확보하면 충분했다. 비유하자면, 1월에 고기를 실컷 먹고 12월에 채소를 몰아 먹어도 연간 균형 식단이라고 인정받는 방식이다. 반면 24/7 CFE는 매 끼니마다 균형 잡힌 식단을 요구한다. 밤새 전기를 쓰면서 낮의 태양광 실적으로 이를 상쇄하는 방식은 탄소 배출 시간대를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구글은 2030년까지 매 시간 무탄소 전력으로 모든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용 전력의 100%를, 사용 시간 100% 동안, 탄소 없는 전원으로 채우는 이른바 '100/100/0' 목표를 공식화했다. 24시간 쉬지 않는 데이터센터에서 낮의 남는 재생에너지로 밤의 화석연료 사용을 상쇄하는 방식은 진정한 탄소중립과 거리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제연합(UN) 주도의 24/7 CFE 이니셔티브에는 이미 180곳이 넘는 기업·정부·기관이 참여 중이다. 이 변화는 국내 수출기업에도 현실적인 압박으로 다가온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협력업체에 시간 단위 기준을 직접 요구하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공급망 전반에서 무탄소 전력의 시간 단위 사용 실적을 계약 조건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은 이미 뚜렷하다.
선도기업의 기준이 '매 시간'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국내 기업도 연간 사용량만이 아니라 어느 시간대에 어떤 전원을 썼는지까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오후 2시에 쓴 전기가 같은 시간대 무탄소 발전량과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 저녁 부족분은 어떤 수단으로 보완했는지를 실제 계량 데이터로 확인하고 증빙으로 남기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절차 강화가 아니라 에너지 사용의 투명성을 시간 단위로 입증하라는 요구다.
식당으로 치면, 연간 친환경 식재료 구매 영수증이 아니라 오늘 점심 메뉴 하나하나의 원산지 이력서가 필요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국내에 이런 시간 정보를 담은 CFE 인증 체계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준비가 늦으면 해외 고객사의 요구가 본격화될 때 기업은 더 높은 비용을 치르거나 증빙을 제때 제출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기존 RE100 이행 성과는 살리되, 그 위에 시간 정보를 결합한 CFE 인증·보고 기반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공적 인프라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시간 단위 무탄소 매칭이 모든 기업의 공통 토대가 된다. 전력을 '언제' '어떤 전원으로' 썼는지 신뢰할 수 있게 보여주는 CFE 기반,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이유다. 정부 및 한전의 역할을 기대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