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자연부터 사람까지…日 특유의 화법으로 그린 세상 풍정[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15) 우키요에
에도시대 소비된 육필화·목판화
밑그림·조각·인쇄 '협업의 산물'
'카나가와해안 파도너머' 대표적
풍경그림 넘어 인물화까지 확산
'자포니즘'으로 인상파에도 영향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동해도오십삼차'(1833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동해도오십삼차'(1833년)

'우키요에'(浮世繪)는 글자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 세상 풍정'을 그린 그림이다. 제작수가 적은 '육필화'는 소수가 남았고, 대중적으로 소비됐던 '목판화'가 주로 알려져 있다. 목판의 요철면을 이용해 채색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①화가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②그 그림을 목판에 얹어서 그림대로 조각을 하고 ③목판 위에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누르면서 색을 입히는 단계별 전문직의 순차적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그림을 그린 화가(繪師, 에시)의 이름만 알려져 있지만, 두번째 단계의 조사(彫師, 호리시)와 세번째 단계의 접사(摺師, 스리시)들도 명성이 자자하다. 판화이기 때문에, 제작소의 이름도 낙관처럼 집어넣었다. 중국 남송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 독특의 화법으로 발전했던 점에 주목하고 싶다. 세상과 인생살이의 삼차원적 정보를 이차원의 종이 위에 표현한 일본식 화법이 우키요에라고도 말할 수 있다.

 
1855년 제1회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일본도자기의 포장지로 사용됐던 목판화의 구겨진 우키요에가 우연히 유럽의 화가들에게 소개됐다는 '자포니즘' 시작의 극화된 전설도 있지만, 우키요에는 그보다 일찍이 나가사키 테지마(出島) 상관의 군의(軍醫) 필리프 지볼트에 의해서 수집되었던 기록도 남아 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풍정, 우키요에
 
다빈치가 남긴 인체해부도의 섬세함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별명이 천재화가인 카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쌍혈단포'는 총의 평면도, 측면도, 이면도, 배면부분도를 정투영법(正投影法)의 정시화 기법으로 대상을 실측해 그린 스케치다. 그는 '호쿠사이만화'(北齋漫畵, 1819년)라는 10편의 작품도 남겼다. '홀로'가 대세인 현대 일본인들의 만화 집착에 기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호쿠사이의 유산이다. 그의 '부악삼십육경'(富嶽三十六景, 1825~1838년) 중에서도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카나가와해안 파도너머'는 세상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멀리 눈 덮인 후지산, 거대한 파도 속에 점으로 갇힌 사람들의 스스럼없는 표현은 지진과 화산, 쓰나미의 자연재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반영하기에 충분하다. 자연으로부터 터득한 일상화된 드라마티즘이 호쿠사이의 화법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키요에 화법의 요점을 현대미술사의 입장에서 평가함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데포르마숑'(deformation) 그 자체다. 뉴욕에 있는 모마(MoMA)의 마티스 컬렉션 중, 초창기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우키요에의 드라마티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경직된 사실성의 감옥을 박차고 나온 '데포르마숑'이라고 하면, 앙리 마티스를 필두로 한 야수파를 거론하는데, 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 이래의 인상파를 딛고 일어선 그룹이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고흐가 우키요에를 모사한 자신의 작품을 제시함으로써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 연원이 우키요에에 있음은 이미 입이 닳도록 논증되어 있다. 인상파에서는 낌새도 챌 수 없는 '데포르마숑' 기법을 담고 있는 우키요에 영향의 두번째 물결이 야수파로부터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에 이른다는 문외한의 졸견이 통할 수 있을까. 우키요에의 '데포르마숑'에 원색의 강렬함을 뒤덮은 마티스의 작품이 탄생되었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그림으로 전개된 일본 근대사가 우키요에의 '풍경화'에도 펼쳐진다. 풍경화의 거장이란 별명이 삼대까지 이어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동해도오십삼차'(1833년)가 대표적이다. 에도의 닛본바시(日本橋)를 출발한 후 동해도53의 '야도'(宿)를 경유하여, 종점에 가까운 '카모가와'가 있는 '라쿠츄'(洛中)에 도착한 상태의 한 폭에는 '히로시게화'(廣重畵)란 낙관이 선명하다. 낙중은 쿄토란 의미이고, 유명한 사찰인 키요미즈테라가 있는 지역의 이름도 과거에는 낙동(洛東)이었다. 이렇듯 우키요에에 적용된 글자들은 특유의 옛말이 많다. 원경으로 해발 848m의 히에잔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다리 위의 촌마두인(寸馬豆人·수묵화와 풍경화의 원경으로 보이는 인마에 적용한 용어)을 표현했다. 당시 쿄토의 풍속과 원경을 모호하게 점재하면서, 초점은 교각에 집중되었다. '삼재도회'(三才圖會) 제34권 선교부(船橋部)의 설명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의 호조(北條)씨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기념으로 1590년 63개의 석주로 다리를 완성하였다고 적었다. '대일본지명사서'에도 석주로 기록되어 있고, 명치천황의 최초 사진을 찍었던 우치다 쿠이치가 1873년에 찍은 사진에도 분명히 석주가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히로시게가 그러한 사실들을 묵살하고 목주로 표현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석주로 그릴 경우 아래쪽으로 실리는 과중한 무게에 눌림을 받는 '에다마'(繪靈)가 작가 히로시게로 하여금 석주를 목주로 바꾸게 한 것이다.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고유의 천부적 창조성이란 결론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애니미즘의 일본문화론을 소환하는 인류학적 안목을 추가하고 싶다.

 
■주술적 민간 신앙의 기능도 담아
 
미인화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던 키타가와 우타마로는 분명하게 모델을 사용했다. 금전을 받는 대가로 성적인 서비스나 가무와 유흥을 제공하는 직업적인 유녀(遊女)나 막부가 공인한 유곽에서 샤미센(三味線)과 가무 및 다도와 서도 등 고도의 교양과 예능을 겸비한 오이란(花魁) 등이 모델로 등장하면서, 과감한 여성의 관능미가 압권의 눈요기다. 우타가와 사다히데의 '카나가와요코하마 신개항도'(1860년)는 개항지에 몰려든 서양인과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들이 뒤섞여 있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 개들도 돌아다니고, 주둥이가 길쭉한 돼지 한 마리도 어슬렁거린다. 19세기 중반 국제도시 요코하마의 번화가, 그곳에 돼지가 사람들 사이에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오세아니아의 도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과 겹친다. 일본의 기층문화는 역시 남쪽의 오세아니아와 연동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우타가와 요시토라의 '요코하마 일람지도'(1870년) 오른쪽 하단에는 서민들 사이에 가장 넓게 숭상되는 칠복신(七福神)이 함박웃음으로 앉아 있는 쌍두마차를 그려 넣었다. 소유자가 걸어두는 그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키요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초복부적(招福符籍)의 주술적 민간신앙의 기능도 담고 있다. 과감한 생략과 교체와 부분적 과잉 표현의 시도를 완성한 우키요에는 계급적 사회성의 구속감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추구한 일본식 근대성의 표현이다. AI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데포르마숑'과 '에다마'로 집약된 우키요에의 심미인류학이 전개될 가능성을 바라본다.

자연부터 사람까지…日 특유의 화법으로 그린 세상 풍정[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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