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전세 제도의 지속력

파이낸셜뉴스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전세는 사라져가는 주거 유형일까. 숫자만 보면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1995~2015년 전국 임차가구 중 전세 비중은 63.6%에서 35.8%로 크게 낮아졌다. 금융 접근성 향상, 저금리, 1·2인 가구 증가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2020년 전국 전세 비중은 36.4%로 2015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서울의 전세 비중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2015년 45.3%, 2020년 45.4%로 거의 변화가 없었고 2024년 서울시 주거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적어도 2015년 이후 전세 비중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전세는 수명을 다한 제도라기보다 월세와 공존하는 새로운 균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세 회의론에도 일리는 있다. 전세사기는 전세가 보증금 반환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세가 임대인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사금융 역할을 해왔지만, 금융 발달로 그 기능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갭투자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세의 부작용을 인정하더라도, 전세가 왜 여전히 선택되고 있는지는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전세는 보증금을 매개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필요가 맞물리는 계약이다. 보증금의 활용 가치가 월세 수입보다 더 큰 임대인과, 목돈을 마련했거나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임차인은 전세를 선호할 것이다. 반대로 보증금을 활용하는 것보다 월세 수입이 더 나은 임대인과, 초기 자금이 부족하거나 유동성을 중시하는 임차인은 월세를 선호할 것이다. 전세와 월세의 공존은 서로 다른 자금 사정과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에게 맞는 계약을 고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 전세를 선택하는지를 보면 전세의 또 다른 역할이 나타난다.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가구주 집단의 주거 형태를 따라가 보면, 20대 초반에는 월세 비중이 높고 20대 후반~30대에는 전세 비중이 크게 높아지며 이후 자가 비중이 상승한다. 특히 서울에서는 30대 전세 비중이 60% 안팎까지 높아진다. 이는 전세가 월세와 자가 사이에서 주거안정과 자산형성의 중간 단계로도 기능해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전세에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월세 역시 위험이 없는 계약은 아니다. 월세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미납 위험을, 전세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위험을 부담한다. 두 계약의 차이는 위험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위험이 누구에게 배분되는가에 있다.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임대인의 부채와 선순위 권리 확인 절차의 실효성을 높이고, 위험에 맞게 설계된 보증과 에스크로 등을 통해 주택임대차계약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정책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전세가 정말 그 가치를 잃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월세를 선택할 것이고,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만으로는 전세가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세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일정한 수요층을 중심으로 월세와 공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전세와 월세라는 두 선택지 각각의 위험을 관리할 방법이다.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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