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값싼 원유보다 끊기지 않는 공급"..중동 리스크에 달라진 정유업 경쟁력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최근 국제 에너지 시장, 지정학적 리스크 상시화
호르무즈 봉쇄에 북미·남미·아프리카산 원유 확대

[파이낸셜뉴스]

지난 6월 17일(현지 시간)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소형 모터보트 한 척이 정박 중인 선박들 사이를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월 17일(현지 시간)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소형 모터보트 한 척이 정박 중인 선박들 사이를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6년 1~5월 지역별 원유 도입 물량 및 비중
(천 배럴 )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중동 계
20,471(5.2%) 20,934(5.3%) 104,854(26.6%) 247,280(62.8%) 393,539(100%)
(한국석유공사 )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에너지 공급망 불안도 재점화되고 있다. 휴전 이후 진정 국면을 보이던 중동 정세가 다시 흔들리면서 국제유가뿐 아니라 원유 조달 차질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1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해지면서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 운송로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만큼 해협 상황이 국내 원유 수급과 정유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급망 다변화가 생존 전략"
이에 따라 정유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쟁 공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얼마나 저렴한 원유를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지역에서든 원유를 끊기지 않고 들여올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같은 품질이라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원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미·이란 갈등이 심화된 이후에는 중동 외 지역에서도 원유를 안정적으로 들여와 공급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원유 조달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중동 산유국에서 출발한 유조선이 국내 정유사로 직접 운송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에서 다른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선박 간 환적(STS·Ship to Ship) 방식까지 활용되고 있다.

선박 간 환적은 운송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대체 항로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안정적인 원유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 가능성을 다시 시사하면서 환적에 필요한 선박 확보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된 기간 비중동산 원유 확보를 위해 조달선을 확대하고 선박 운항 일정과 물류 체계를 조정하는 등 대체 공급망 확보에 주력했다.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산 원유 도입도 크게 늘었다. 한국석유공사 원유 수입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5월 캐나다와 콩고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5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알제리와 가봉산 원유 수입도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운송비 부담은 다소 커졌지만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춰 공급 차질 위험을 줄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경쟁력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북미·남미·아프리카산 원유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 정책도 위기 대응 효과 입증
정부의 원유 도입선 다변화 정책도 이번 위기에서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정책은 미주나 아프리카 등 중동 이외 지역에서 원유를 수입할 때 발생하는 운임 초과분을 석유수입부과금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제도로, 1982년 도입됐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고시를 개정해 4~6월 통관되는 다변화 물량에 대해서는 수입부과금을 전액 환급했다.

그 결과 전쟁 이후인 3~4월 미국의 전체 원유 수출은 최근 3년 평균보다 8% 증가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하루 평균 약 60만 배럴의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며 세계 최대 수입국에 올랐다. 이는 전쟁 이전 3년 평균 도입량인 약 45만 배럴보다 33% 늘어난 규모다. 글로벌 도입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도 정부 지원이 대체 물량 확보에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제 에너지 시장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산유국과 안정적인 석유제품 공급처를 확보하려는 수입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있다"며 "글로벌 5위 수준의 정제 능력을 갖춘 국내 정유업계가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공급망 관리 역량까지 확보한다면 앞으로 경쟁력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박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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