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소상공인 사회안전망 구축 나서야

파이낸셜뉴스
김유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임이사
김유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임이사

전통시장을 찾을 때마다 '폐업 정리' 안내문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예전에는 장사가 어려워도 버텼지만 이제는 버틸 힘조차 남지 않았다는 상인들의 하소연이 먼저 들린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Risk Society)'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과거의 위험이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외부의 위협이었다면 오늘날의 위험은 경기침체와 고금리·고물가, 플랫폼 경제의 확산, 감염병, 기후변화처럼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비자발적 위험이다. 이러한 위험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계층은 소상공인이다.

최근 늘어나는 소상공인의 휴·폐업은 더 이상 개인의 경영 실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해도 소비는 줄고 임대료와 인건비는 오르며 온라인 소비는 갈수록 늘어난다. 폐업 뒤에는 빚과 생계의 불안, 심리적 고립이 남는다. 경제위기 때마다 자영업자의 극단적 선택이 증가하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정책의 과제다.

소상공인은 단순한 자영업자가 아니다. 골목의 식당과 카페, 미용실, 세탁소, 전통시장 점포 하나하나는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생활 인프라이자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점포 하나가 문을 닫으면 매출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단골과 이웃의 관계가 끊기며 골목상권의 활력도 함께 약해진다. 소상공인의 위기는 곧 지역공동체의 위기다.

지난 20여년 동안 소상공인 정책은 창업과 성장에 많은 역량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위험사회에서는 '잘 키우는 정책'만큼 '무너지지 않게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이제 정책의 중심도 창업과 폐업 지원을 넘어 경영위기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과 함께 정책보험을 소상공인 사회안전망의 한 축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1인 소상공인은 질병과 사고, 출산과 육아, 범죄 피해, 일시적 휴업만으로도 곧바로 생계위기에 놓일 수 있다. 휴업 기간의 고정비 지원, 경영컨설팅, 채무조정, 심리회복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정부의 정책보험과 민간보험이 상호 보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말이 있다. 소상공인 안전망도 다르지 않다. 위험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사회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이다. 모세혈관이 건강해야 몸 전체가 건강하듯 소상공인이 버텨야 지역경제도 살아난다. 위험사회의 시대,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촘촘한 안전망이다. 사람을 지키는 정책이 시장을 살리고, 시장을 살리는 정책이 결국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길이다.

김유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임이사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