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책과 놀이로 여는 생애 첫 '문해의 문'
최근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독서중점 시범기관 운영, 지역도서관 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유아 독서교육 문화 확산에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히 책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초기 문해 경험을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많은 부모가 문해력을 걱정하며 아이가 글자를 빨리 익혀 책을 스스로 읽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유아기의 문해는 성인과 다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먼저 책을 즐거운 대상으로 경험해야 한다. 그림책을 함께 보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이야기하며, 책 속 장면을 놀이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사고, 상상력, 정서가 함께 자란다. 문해력은 글자를 가르친 결과가 아니라 의미 있는 언어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힘이다.
특히 그림책은 영유아의 발달 특성에 가장 적합한 문해 매체다.
그림책 속 그림은 아직 문자 해독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맥락과 함께 주어지는 새로운 낱말, 반복되는 문장과 리듬감 있는 표현은 언어 발달을 촉진한다. 또 다양한 상황과 인물을 접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그림책 한 권에 언어, 인지, 사회정서 발달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림책의 가치는 글과 그림 그 자체보다 상호작용에 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며 대화를 풍부하게 나눠야 하는 이유다. 또 책의 내용이 놀이로 연결되면 더 효과적이다. 책장을 덮은 뒤에 산책하러 가거나, 배경을 꾸며놓고 인형놀이를 하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역할놀이를 할 수 있다.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해 정답을 묻는 게 아니라 아이가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게 도와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어휘와 표현력을 확장한다. 기초 문해력은 독해가 아닌 구어 사용과 놀이를 통해 탄탄하게 다져진다.
영유아기에 형성된 책에 대한 긍정적 경험은 이후 학령기와 청소년기의 읽기 동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습 독서만 강조하면 책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평가를 위한 참고서로만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영유아 독서교육의 목표는 '많이 읽는 아이'가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데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과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놀이 아이디어를 담은 책 꾸러미 대여, 가족 독서 챌린지, 학부모 그림책 연수와 같은 프로그램은 이러한 연계를 돕는 좋은 방법이다.
아이들이 지역과 환경에 관계없이 양질의 독서 경험을 누릴 수 있게 할 유아 독서교육 내실화 지원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이 조기 문자교육이 아니라 성인과의 상호작용, 그림책 읽기, 책놀이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힘은 정보를 단순히 읽는 능력이 아니라 궁금함을 좋은 질문으로 바꾸고 의미를 이해하며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그 출발은 거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작은 순간에 있다. 즐거운 독서 경험이 아이들의 문해력을 키울 씨앗이 돼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