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그린스펀과 클린턴

파이낸셜뉴스
임상수 논설위원
임상수 논설위원

"기쁘게도, 클린턴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적자 문제의 시급함을 그도 알아챈 것 같았고, 정치인들에게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날카로운 질문도 여러 차례 던졌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007년 펴낸 자서전 '격동의 시대'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가한 대목이다. 평생 공화당원인 그가 자신이 만난 7명의 대통령 중 가장 높이 평가한 인물은 의외로 민주당의 클린턴이었다. 지난달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까지 18년 넘게 연준 의장을 지내며 공화당 대통령 3명과 민주당 대통령 1명을 거쳤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 4명을 포함해 역대 대통령 7명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그린스펀은 "클린턴은 많은 결점에도 내가 만나 본 이들 중 가장 지적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과 많이 비슷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공화당원 닉슨보다 클린턴을 더 높이 본 것은 정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대선을 앞둔 내부 모임에서 닉슨의 연설을 듣고 "그는 정책 토론 대신 민주당을 향한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언성을 높이지 않았지만 그 어조가 너무 강렬하고 험해 토니 소프라노(드라마 속 마피아 두목)마저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고 적었다. 그의 이런 면모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고도 했다.

클린턴에 대해서는 "사실에 입각해 국가경제 전반을 직관하는 통찰력을 지녔고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과감히 추진하는 정치적 용기를 보였다"고 찬사했다. 실제로 1993년 클린턴은 민주당 내부 반발과 공화당의 공세 속에서도 재정적자 감축법을 가까스로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만큼 정치적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인간적으로도 가까웠다. "나는 시가를 같이 피우거나 축구 경기를 함께 볼 친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둘 다 책을 많이 읽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호기심이 많았다. 클린턴은 우리를 '기묘한 경제 커플'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렀다."

미국 정계와 언론도 그의 자서전이 공개됐을 때 공화당원인 그린스펀이 민주당 대통령과 가까웠다는 점에 주목했다. 클린턴 역시 재임 중 그를 연준 의장으로 재지명하며 화답했다. 당시 정가는 물론 그린스펀 본인도 민주당 출신의 새 의장이 임명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모니카 르윈스키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는 "매우 실망스럽고 서글펐다"고 적었다.

그린스펀을 사로잡은 것은 클린턴의 선입견 없는 경청에 이은 정치적 결단이었다. 클린턴이 법안 통과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린스펀은 백악관으로 그를 찾아가 격려했다. 최소한 경제 문제만큼은 정파를 뛰어넘었다. 결국 이 법은 1990년대 후반 재정흑자 전환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립성이 생명인 연준에서 그가 18년 넘게 의장직을 지킨 사실도 놀랍지만 정파보다 국가경제를 앞세운 두 사람의 우정과 신뢰 역시 인상적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미국은 다르다. 양극화는 심해졌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 양당은 진영 논리에 갇혀 사사건건 충돌한다. 상대가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아도 무조건 반대하는 일이 적지 않다. 자신들이 주장했던 정책도 상대가 다시 들고나오면 돌아선다. 이런 편가르기는 전문가 사회에도 번져 연구 결과가 충분하게 축적된 사안마저 정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이는 전문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든다.

뼛속까지 공화당원인 그린스펀은 자서전에 이런 바람을 남겼다. "공화당 대통령과 민주당 부통령, 아니면 그 반대의 조합이 탄생한다면 정치에 무관심했던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가끔 생각해 본다." 정당은 달라도 국익 앞에서 기꺼이 협력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오늘 우리 정치가 곱씹어야 할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email protected] 임상수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