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보고서부터 인생 상담까지 'AI 위탁' 확산
일거수일투족 써가며 답변 구해
민감정보 학습 데이터 활용 우려
전문가, 과도한 의존·신뢰 '경고'
#. 경기 성남시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정모씨(31)는 최근 직장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 챗GPT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대화 내용을 입력해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지 등을 물었다. 정씨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같은 고민을 반복해 말하기는 부담스럽지만 AI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다"며 "이제 고민이 생기면 주변 사람보다 챗GPT를 먼저 찾는다"고 말했다.
업무뿐 아니라 사적인 고민에 대한 판단까지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맡기는 '일상적 외주화'가 확산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민감정보 유출 위험과 과도한 의존을 경고하며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일 마이크로소프트 AI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한국의 AI 사용률은 37.1%로 지난해 하반기(30.7%) 대비 6.4%p 상승했다. 집계 대상국 가운데 상승 폭이 가장 컸으며, 세계 순위도 18위에서 16위로 올랐다.
AI 확산세는 일터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직장인들은 AI를 '업무 동반자'로 삼아 이메일·보고서 작성과 번역, 엑셀·PPT 작업 등에 활용하는 추세다.
AI가 업무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의존도 역시 커졌다. 지난 15일 오전 챗GPT 장애 발생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서울 강남구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모씨(29)는 당시 보고서 퇴고를 위해 같은 프롬프트를 수차례 입력했지만, '서버에 문제가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주세요'라는 답변만 돌아와 업무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이씨는 "40분가량 초조해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스스로를 보며 AI에 얼마나 의존해왔는지 실감했다"며 "이제 AI가 없는 업무 환경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실 보좌진 김모씨(31) 역시 "의원의 요청을 받아 출근하자마자 정부 자료를 분석해 질의서를 작성하려 했는데, 챗GPT가 먹통이 돼 업무가 마비됐다"며 "단순한 문장조차 쓰기 어려워하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됐다"고 전했다.
'AI 위탁'은 업무 보조를 넘어 개인 상담 영역으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진로 고민이나 직장 내 갈등, 연애·인간관계 문제 등 자신의 상황을 입력한 뒤 판단과 대응 방안을 AI에 묻는 식이다.
홍익대에 재학하며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씨(27)는 학점과 자격증, 대외활동 경력 등을 제미나이에 입력한 뒤 자신에게 적합한 직무와 취업 가능성을 물었다. 이후 제미나이 분석을 토대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도 대비하고 있다.
김씨는 "AI가 나의 대학 생활 전반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보니 누구보다 신뢰한다"며 "부족한 부분을 냉철하게 짚어줘 객관적으로 자기 점검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다툰 뒤에도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종종 조언을 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생성형 AI에 입력한 개인정보나 회사 내부 자료가 AI 서비스 업체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지능정보보호학부 교수는 "유출 우려가 있는 만큼 민감한 자료는 가급적 AI에 넣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화 내용을 학습에 쓰거나 기억하지 않겠다'는 옵션이 있다면 이를 활성화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AI가 자신을 점점 더 잘 알게 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고 의존성도 커질 수 있다"며 "특히 아동·청소년의 경우 가치관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임을 고려한다면 체적인 이용 지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psh@fnnews.com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