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한국사회 고질병 '불안' 떨치려면
국가 발전을 이끌었던 경쟁 시스템
승자·패자 가릴것 없이 불안 재생산
행복지수 낮고 자살률 OECD 1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사회 만들고
타인과 비교말고 자신에 집중하며
미래의 불안보다 현재에 충실해야
현재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불안일 것이다. 청년은 취업을 걱정하고, 직장인은 승진과 구조조정을 걱정하며, 자영업자는 폐업을, 중장년은 노후를,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
경제 규모는 커졌고 생활 수준도 과거보다 크게 향상되었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교육 수준과 뛰어난 산업 경쟁력을 갖춘 나라임에도 행복지수는 낮고 우울과 불안,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도 불안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불안이 되지 않는다. 실직하거나 병에 걸리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국가와 사회를 하나의 보험처럼 인식한다. 실패가 곧 인생의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신뢰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구조적으로 불안이 확대되기 쉬운 사회이다. 특히 한국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가장 큰 이유는 성장 과정에 있다. 한국은 풍부한 천연자원도 없고, 넓은 내수시장도 없는 나라였다. 결국 사람의 능력과 노력만이 유일한 성장자원이었고, 국가 발전은 치열한 경쟁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교육 경쟁,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승진 경쟁이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되었고 그 결과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성공을 이끌었던 경쟁 시스템은 이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달러에 가까워졌지만 행복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다. 경제적 풍요가 개개인의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승자, 패자 가릴 것 없이 끊임없이 불안을 재생산하는 구조이다.
최근에는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 집중, 청년 일자리 부족, 주택 가격 상승,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까지 겹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 일자리의 불안도 확대하고 있다. 불안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통된 정서가 되었다.
그렇다면 불안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일차적으로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경쟁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과도한 경쟁을 완화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 질 높은 공교육, 청년의 자산형성 지원, 지역 균형발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소득과 자산 양극화 완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안정된 사회가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관점의 전환도 요구된다. 사회적 신뢰가 높을수록 소비와 투자도 확대되고, 경제는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같은 사회에서도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불안은 외부 환경과 함께 개인의 인식 구조에서도 만들어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헛된 욕망을 계속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경쟁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공을 자신의 존재 가치에 연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세우고, 타인과의 비교보다 자신에 집중하며, 미래의 불안보다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족과 친구 같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는 일 역시 개인의 불안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적절한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가 만들어낸 과도한 불안과 스스로 만들어낸 끝없는 불안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개인은 끝없는 비교와 무한한 성공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불안사회는 제도만으로도, 마음가짐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구조가 사람을 안심시켜야 하고, 개인의 인식이 삶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구조적 전환과 인식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를 넘어 마음까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