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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AI와 결합한 개발원조

파이낸셜뉴스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 된 땅에 처음 도착한 원조는 밀가루 포대와 의약품이었다. 그다음 초토화된 국토에 도로와 항만, 발전소와 학교가 들어선다. 고마운 손길 덕분에 지금의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는 그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았다. 원조 받던 나라가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으로 전환됐다. 새마을운동은 해외 원조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개발원조도 경쟁력이 요구된다. 개발원조가 시대별로 바뀐 과정을 우물 이야기로 풀어보자.

오염된 식수원으로 고통받는 마을이 있다. 1990년대엔 엔지니어들이 지질을 조사하고 중장비로 깊은 우물을 판다. 시멘트로 둘레를 보강하고 펌프를 설치한 뒤 준공식을 연다. 그러나 5년 뒤 펌프가 고장 나면 부품을 구할 데가 없고 고칠 기술자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3㎞ 떨어진 강으로 물을 길으러 간다. 돈과 시간을 들인 우물은 그렇게 폐허가 된다.

2010년대라면 여기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단다. 수질과 수위, 펌프 작동 상태가 실시간으로 보건소 태블릿에 전송되고 고장 징후가 감지되면 문자 알림이 간다. 마을 청년 몇 명은 기본적인 유지·보수 교육을 받아 스스로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건기가 되면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고, 우기가 되면 지표면의 오염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드는 걸 센서는 알려줄 뿐 막지는 못한다. 문제가 벌어진 뒤에야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2026년 현재는 어떨까. 인공지능(AI)이 5년 치 수위 데이터와 20년 치 기상 데이터, 인근 100개 마을의 지하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한다. 석 달 뒤의 가뭄을 미리 예측해 물 사용 조절을 권고하고, 어느 방목지에서 가축 배설물이 비와 함께 흘러드는지 오염경로를 짚어내 사전에 막는다. 이 마을의 데이터는 인근 50개 마을과 공유되면서 하나의 통합 물 관리 시스템으로 거듭난다. 우물 하나를 고쳐주는 원조가 아니라, 지역 전체가 스스로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네트워크를 놓아주는 원조다.

이 가상의 사례는 'AI 휴먼 코드'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개발원조 방식이 전통적 물자 제공에서 디지털 그리고 AI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물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의 개발원조 전략도 AI를 중심에 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개발원조에 AI를 접목하면 명분과 실용을 갖추기 좋다. 전통적 개발원조 방식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개발원조는 상대국을 돕는다는 취지를 살리면서 국내 수출을 늘리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그런데 지원국이 실익만 앞세우면 수혜국으로부터 원조를 빙자한 장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대로 무상원조 비중이 커지면 세금 낭비라는 국내 여론의 비난에 직면한다.

게다가 개발원조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중국은 도로와 항만 건설 같은 일대일로 정책에서 5G와 스마트시티 등 디지털 실크로드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일본도 AI를 앞세워 아세안 지역 내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AI를 개발원조의 새 축으로 삼는 전략은 한국에 안성맞춤이다. 정부가 내건 'AI 3강'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장기 전략이다. 국내에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짓고 연구인력을 육성하더라도 초강대국들의 물량공세를 넘어서기 버겁다. 자본과 시장 규모에서 압도적인 미국과 중국을 같은 방식으로 따라가다가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격이 될 수 있다.

땅도 자원도 적은 한국은 연대와 네트워크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세계에는 데이터센터와 전문인력, 학습데이터가 부족해 AI 전환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나라가 수두룩하다. 산업과 행정, 의료와 교육에 AI를 구축하는 개발원조는 공동성장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수원국은 새로운 발전역량을 얻고, 한국 기업은 기술 실증과 시장을 넓히는 기회다. 한국이 개발원조와 AI 전략을 결합해야 하는 이유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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