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로봇 개발도 수소차 충전도, 규제 대못 왜 못 뽑나
경총, 개선 필요한 규제 112건 건의
기술 변화 못 쫓아가는 제도 고쳐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1일 정부에 건의한 112건의 규제개선 과제는 기술과 제도 사이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현재 연구개발용 로봇은 규제특례를 받지 않으면 사람의 얼굴과 음성을 모자이크하거나 변조한 데이터만 활용해야 한다. 원본 데이터는 쓰지 못한다. 정비 과정에서 초저압 상태의 수소차는 충전기준이 없어 충전 자체가 어렵다. 세계는 피지컬 인공지능(AI)과 수소경제 선점을 위해 속도전을 치르는데 우리는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으로 제자리 뛰기만 해야 할 판이다.
로봇이 가공된 자료에 의존하면 정확성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미세한 움직임과 돌발행동, 위험신호를 원본 데이터로 정확히 학습할 수 있어야 기술의 벽을 넘을 것이다. 이런 경직된 기준을 고수하다가는 기술개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규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봇의 연구개발 단계에서 원본 활용을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안일한 관리방식이다. 자율주행차를 둘러싸고도 같은 비판이 있었다. 정부는 결국 보안과 목적 외 이용 금지 등을 전제로 원본 영상 제한 규제를 풀었다. 그런데 로봇에는 여전히 엄격한 기준을 강제한다. 형평성도 융통성도 없다.
수소차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초저압 수소차 충전기준뿐 아니라 이동형 수소충전소 배치기준도 불분명하다. 새 충전소의 안전성능 평가 중복 문제도 계속 제기된다. 수소를 고압으로 다루는 만큼 엄격한 안전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위험을 이유로 모호한 기준만 제시한 채 생산과 정비를 막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산업 숨통을 죄는 규제는 곳곳에 널려있다. 경총에 따르면 해외 공장을 철수하고 국내로 돌아오려는 기업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사례도 많다. 노후 산업단지의 빈 땅에 창고를 지을 수 없고 운수업 입주도 제한을 받는다. 물류센터가 폐스티로폼을 현장에서 분쇄·압축하는 것도 규정에 어긋난다. 이런 규제가 쌓이면 투자비용이 더 들고 사업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은 떠날 것이다.
노동규제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장기 저성과자 해고 기준과 절차가 불명확해 기업이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근로자 보호는 필요하지만 유연성이 없으면 성실한 근로자와 기업 모두 피해를 본다. 20년 가까이 바뀌지 않은 파견허용 업무도 산업구조 변화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혁신 로드맵과 규제샌드박스가 발표됐다. '선허용·후규제' 원칙도 수없이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주말 경제단체 수장들이 제주도에서 낡은 규제 혁파에 한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은 신산업 초격차 경쟁의 시대다. 미국과 중국은 AI와 로봇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쏟아붓고 있다. 기술경쟁의 승패는 누가 더 빨리 실험하고 사업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력이 아니라 수십년 전 만들어진 규정과 안일한 행정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진다면 누구 책임인가.
보호를 명분으로 기술 활용을 제한하는 방식은 산업과 경제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다. 연구개발 단계에선 폭넓게 허용하되 상용화 단계에서 책임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특히 신산업 분야의 규제 대못을 빨리 뽑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