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사우디 '안전핀' 제거된 核협정 맺었나…중동 核도미노 우려(종합)
외신들 "사우디에 농축·재처리 허용"…이란전쟁 와중 중동정세 파장 예고 美 원전 판매, 사우디 원유 수출 늘려…'지정학적 이해관계 부합' 해석 양측 "핵무기 개발 없다" 입모으지만…"민간용이 군사용의 첫단추" 반론도
美·사우디 '안전핀' 제거된 核협정 맺었나…중동 核도미노 우려(종합)
외신들 "사우디에 농축·재처리 허용"…이란전쟁 와중 중동정세 파장 예고
美 원전 판매, 사우디 원유 수출 늘려…'지정학적 이해관계 부합' 해석
양측 "핵무기 개발 없다" 입모으지만…"민간용이 군사용의 첫단추" 반론도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22일(현지시간) 체결한 원자력 협정이 발효할 경우 중동 정세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미 원자력법 123조에 바탕을 둬 '123 협정'으로 불리는 이번 협정이 기존과 달리 사우디의 자체 핵물질 농축·재처리를 잠재적으로 허용, 장차 무기급 핵물질 생산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과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이날 원자력 협정과 양자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했다고 미 에너지부가 공식 발표했다.
에너지부는 "높은 수준의 핵 안전, 안보, 핵 비확산 기준을 유지한다"고 설명하고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뉴욕타임스(NYT)·로이터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이 사우디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전 연료를 위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이전하되, 농축·재처리에는 미국 인력만 접근을 허용하는 '블랙박스' 방식이 거론된다.
문제는 사우디에 대해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을 완전히 금지하는 '안전핀'이 제거될 가능성이다. 2년간의 공동연구에서 상업적 타당성이 입증된다는 전제 아래, 사우디가 자국에 매장된 우라늄을 채굴하거나 수입해 농축할 수 있는 것으로 보도된다.
이는 '핵물질 농축·재처리·이전은 미국 승인 없이 불가능하다'는 기존 123 협정의 핵심 조항에 미국 대통령이 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NYT는 짚었다.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이 51개국과 체결한 기존 협정 26건은 모두 면제 조치 없이 승인됐다.
최근 사례로 지난 2009년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과 123 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비교된다.
UAE는 '골드 스탠더드'로 불리는 자체 핵연료 생산 권리 포기를 받아들였고, 추가의정서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을 허용했다.
사우디는 미국과 수년간에 걸친 협상 과정에서 골드 스탠더드와 추가 의정서를 거부해왔다. 현재까지 보도된 바로는 사우디가 이같은 입장을 상당 부분 관철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동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사우디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유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2018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사우디 역시 그 뒤를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이번 협정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데도 튀르키예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연쇄적인 '핵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란에 핵 프로그램 폐기와 핵물질 반출을 요구하면서 5개월째 전쟁을 벌이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중잣대를 들이댔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미국과 사우디는 이번 협정을 통해 경제적·외교적으로 막대한 유·무형의 이익을 얻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자국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를 독점 공급할 전망이다. 웨스팅하우스가 따낼 계약 규모만 수십억달러(NYT), 30년간 유효한 이 협정의 경제적 효과가 수백억달러(WSJ)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사우디 원전 건설에 군침을 흘린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는 반대급부를 얻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우디는 원전 건설을 통해 자국 화력발전에 사용된 원유를 수출용으로 돌리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빈 살만 왕세자가 천명한 방침으로, 현재 사우디는 전력의 68%를 천연가스에서, 32%를 석유에서 얻는다.
중동의 맹주 지위를 놓고 이란·튀르키예와 경쟁하는 사우디로선 미국의 '인증'을 받았다는 점에서 입지가 탄탄해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의 캐런 영은 사우디가 "역내에서 위신"이 높아지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미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크리스틴 디완 선임연구원은 "미국 기업들을 부유하게 하고 사우디를 미국에 더 가깝게 묶는다는 점에서 상업적·지정학적으로 큰 승리"라면서도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가해지는 피해는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미·사우디의 핵 협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이스라엘에선 아직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민간용 원전 프로그램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반응과 군사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니르 바르카트 이스라엘 경제산업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들이 평화적 목적, 즉 에너지 수요를 위해 그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 국방장관 출신인 야권 정치인 아비그도르 리베르만은 "모든 군사용 핵 프로그램은 민간 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협정은 미 의회에서 승인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저지하는 데는 상·하원 합동 결의안이 통과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3분의 2 이상 찬성표가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협정이 불발될 경우 사우디는 중국과 러시아, 또는 UAE에 원전을 건설한 한국이나 프랑스를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로이터는 예상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들 국가에서 입찰받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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