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라면 나가야죠"…용산역 텐트촌 사람들 [낮은 곳의 기록자]
[용산 개발 옆 노숙인 텐트촌]
역 주변 편의시설 가까워 모인 노숙인들
개발·정비 흐름 속 갈 곳 고민 커져
[파이낸셜뉴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죠 뭐 별 수 있나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용산역 인근 고가 아래에서 만난 50대 노숙인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가 앉아 있던 텐트 주변에는 물통과 냄비, 플라스틱 상자, 빈 병이 놓여 있었다. 콘크리트 기둥과 나무 사이로는 다른 텐트들이 줄지어 있었고, 나무 사이에는 이불과 매트리스도 걸려 있었다.
A씨는 "좋아서 밖에 있는 사람은 없다. 당장 오늘 잘 데가 여기라서 있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시설 권유를 많이 받는다"면서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용산역 주변 텐트촌은 2000년대 중반 노숙인들이 철도 정비창 부지 안 작은 공원에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큰길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용산역 뒤편 주차장 옆 계단을 내려가 수풀 쪽으로 들어서면 노숙인들이 생활하는 천막과 생활용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텐트 주변에는 컵과 그릇, 세면도구, 물통, 빨래가 놓여 있었다. 비를 막기 위해 천막 위에 비닐을 덧댄 곳도 있었고, 일부 공간에는 나무판과 상자가 쌓여 있었다.
텐트촌이 역 주변에 남아 있는 이유는 잠자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을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지 않는 곳에 머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이곳에 머무는 60대 노숙인 B씨는 "화장실이 가까운 게 제일 크다"고 했다. 그는 "씻는 건 어렵지만 역 쪽으로 가면 화장실은 있다"며 "완전히 외진 데로 가면 밤에 더 무섭고 필요한 걸 구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거리 노숙인이 역 주변이나 도심 공간에 머무는 이유는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리 노숙인이 오늘 밤 잘 곳을 고르는 이유로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편해서'가 22.7%, '주변에 다른 노숙인들이 있어서'가 16.6%였다.
같은 조사에서 2024년 전국 노숙인 등은 1만2725명이었다. 이 가운데 거리 노숙인은 1349명, 시설 노숙인은 6659명, 쪽방 주민은 4717명이었다. 거리 노숙인의 75.7%인 1022명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인근을 지나던 30대 직장인 C씨는 "처음엔 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며 "냄새나 쓰레기 문제는 걱정되지만, 텐트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치우라고만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50대 회사원 D씨는 "용산역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정비가 필요해 보이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사람을 어디로 보낼지 없이 텐트만 걷는 방식이면 또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렇게 텐트촌은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생존의 공간이다. 그러나 역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에게는 관리가 필요한 공간이다. 고가 아래와 수풀 사이에 생활이 이어지면서 쓰레기가 쌓였고, 계절에 따라 위생과 안전 문제도 커질 수 있다.
현장에는 실제로 물이 고인 통과 빈 병, 각종 조리도구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여름철에는 건강 문제가 커질 수 있고, 겨울에는 난방기구 사용으로 화재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일부 텐트 주변에는 소화기도 보였다.
그렇다고 시설로 옮기는 일이 간단한 것도 아니다. 복지부 실태조사에서 거리 노숙인이 생활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단체생활과 규칙 때문에'가 36.8%로 가장 많았다. '실내공간이 답답해서'는 16.6%, '시설을 잘 몰라서'는 14.2%였다. 시설이 있어도 생활 방식과 짐, 관계, 규칙 문제 때문에 거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용산역 일대는 대규모 개발 사업과도 맞물려 있다. 서울시는 옛 용산 철도차량정비창 부지를 중심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용산서울코어 사업 개요에 따르면 사업 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일원 45만6099㎡ 규모다.
개발이 본격화하면 역 주변 환경 정비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다. 텐트촌은 시민 불편과 위생, 안전 문제가 함께 제기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정비는 곧 생존 문제로 이어진다. 천막과 생활용품을 걷어내면 그날 밤 누울 자리도 함께 사라진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됐다. 용산역과 인근 호텔을 잇는 보행교 공사 과정에서 텐트촌 일부가 철거 대상에 포함됐고, 당시 홈리스 단체들은 주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024년에도 용산정비창 개발과 맞물려 텐트촌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노숙인 B씨는 "공사한다고 하면 나가야겠죠"라며 "그런데 나가라고만 하면 어디로 가나. 방을 얻을 돈이 있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시설은 가봤는데 오래 있기는 힘들었다"며 "내 짐을 마음대로 둘 수 있는 데가 없었다"고 했다.
오후가 지나자 텐트촌 안쪽에서는 빨래를 걷는 사람이 보였다.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아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고가 아래 공간은 임시 거처였지만, 그 안에는 식사와 빨래, 잠자리를 챙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생활이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점이다. 텐트는 집처럼 보이지만 법적으로 안정된 주거가 아니고, 비와 더위, 추위를 온전히 막아주지도 못한다. 역 주변에 남아 있으면 시민 불편과 위생 문제가 발생하고, 외곽으로 밀려나면 화장실과 물, 도움을 구할 사람도 멀어진다.
한 노숙인은 "여기 있는 게 좋은 건 아니다"라며 "그래도 밤에 누울 데가 있어야 다음 날도 버틴다"고 말했다. 이어 "나가라면 갈 곳부터 있어야죠"라고 하소연했다.
[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