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소상공인 지원기회 놓친 배달앱 규제

파이낸셜뉴스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제출한 동의의결안을 기각하면서 조만간 과징금 부과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양사가 총 3600억원 규모의 상생안을 제시했음에도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제재 수위가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이제 '얼마나 많은 과징금이 나올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동의의결은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규제당국이 활용하는 제도 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조사 대상기업이 시장회복 방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한다. 규제당국의 조사 사안에 대해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방안이나 소비자 피해구제 등 타당한 방안을 제시하면 규제당국은 의견수렴을 거친 후 타당하다 판단하면 사건을 종결한다. 특히 미국 같은 해외에선 정부 제재만큼이나 민사소송이 두렵기 때문에 기업들이 시장회복 방안을 적극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선 공정위가 지난 2014년에 이 동의의결 제도를 도입했다. 효과도 봤다. 제도 적용의 첫 대상자는 네이버와 다음이었다. 직전 조사에서 공정위는 네이버와 다음이 검색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하고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예상됐지만 네이버와 다음이 제시한 총 1040억원의 상생자금 집행안을 공정위가 받아들였다.

또 다른 동의의결 사례는 애플코리아 건이다. 당시 애플코리아는 국내 이동통신사들을 상대로 광고비와 유상 수리비용을 떠넘기는 등 '갑질'(거래상 지위남용)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 수순에 앞서 애플은 1000억원 규모의 자진 상생방안을 제시해 공정위의 승인을 받았다. 여기엔 제조 분야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제조업 연구개발(R&D) 지원센터 설립·운영방안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애플케어플러스 할인 방안도 함께 담겼다. 네이버와 애플코리아 같은 동의의결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배민·쿠팡이츠에 대한 동의의결안 승인 여부에도 시장의 관심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게 됐다. 상생방안을 담은 동의의결안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등 5개 단체가 지지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징금을 통해 불법행위를 단죄할 순 있지만, 국고에 들어가는 과징금만으로는 시장에 즉각적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거액의 과징금은 단순히 기업 재무제표에 비용 한 줄을 추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 부담은 말 그대로 막대한 현금 유출이다. 두 번째는 이에 불복할 경우 공정위를 상대로 장기간 행정소송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법적 대응에 경영 역량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지원도 멀어진다.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되지만 동의의결을 통해 마련된 상생재원은 시장으로 직접 흘러간다. 앞으로 이어질 법적 공방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그 기간 관련 업체가 소상공인을 지원할 여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공정위의 원칙도 충분히 이해한다. 시장에 좋은 동의의결안을 당국이 받아들였다고 해서 칭찬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다음'과 '애플코리아'의 동의의결안을 승인했을 때 공정위는 늘 '봐주기 논란'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아야 했다. 그러나 사후 처벌만으로는 시장에 뿌리 내린 불공정행위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규모는 1조7000억원이 넘는다. 아무리 가혹한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불공정한 진입장벽이나 지배력 전이의 통로 등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위법행위는 또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미 발생한 불법을 단죄하는 경찰 역할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시장이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정책적 해법 마련에도 공정위가 더 많은 고민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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