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우아한 복수
상대가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위치로
나를 승화시키는게 '우아한 복수'
반목을 넘어 상생의 미래로 진화
가해국 자극하는 소녀상 대신해
선망의 대상인 삼성전자 건물을
日 대사관 앞 세우는 것이 어떨까
"우아한 위선이 정직한 야만보다 낫다." 얼마 전 국제정치 평론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이 표현은 지금의 국제질서 붕괴를 우려하면서 나온 말로, 요컨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니(정직한 야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 말이라도 외치는 우아한 위선으로 포장된 안정적인 기존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표현이 문학적으로 포장되어 있어 멋있게는 들리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 역시 대단히 위선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야만을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이 말은 그냥 위선을 방어하는 말이 된다.
국제정치에서 자국 우선주의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다. 다만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자국 우선주의에 대응하여 인류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아낸 해결책은 자국 우선주의를 우아한 위선으로 가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반대로 국익 추구를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윈윈의 국제협력이나 시장에서의 신뢰에 기반한 거래와 교환, 다자적 제도를 통한 투명한 정책 집행 등이 그 예이다. 야만을 투명성과 신뢰로 극복하자는 것이 작금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이지, 야만을 위선적으로 적당히 가리자는 것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 가식적인 위선으로 남을 속이고, 윈윈이 아닌 제로섬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수정주의 국가나 무임승차 국가에 대해서 패권국가가 직접 지적하고 교정하려는 행위는 정직한 야만이 아니라 오히려 가식과 위선을 들추어내 불균형의 국제질서를 교정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선과 가식을 가리기 위하여 교정의 행위를 야만으로 표현하는 저 문장은 오히려 위선적인 행위라 하겠다. 문명의 진화를 믿는 지식인이라면 야만을 우아한 위선으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제도와 신뢰로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위선은 아무리 우아해도 사람을 속이고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행위이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나 목표에 속하지 않는다. 근대화 이후 생겨난 인류보편적 가치인 투명성과 설명책임성 등에도 배치되는 행위이다. 그런데 위선과 마찬가지로 근대화 이후 강하게 억제되어야 할 행동 중 하나인 복수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우아한 복수'라는 행위를 추구해야 할 목표로 숙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복수라는 행위는 우아한 위선과는 달리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단련시킨다는 미래지향적인 긍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직접 행하는 복수는 부정적 행위에 속한다. 근대화 이후 복수는 법치주의와 공적 사법절차 안에서 정의 실현의 차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 해결방법이 되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복수를 허용하게 되면 복수의 악순환뿐만 아니라 자의적 기준을 적용한 복수가 일어나 공포와 폭력의 사회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반복적인 사화와 삼족을 멸하는 수준의 복수, 처벌 등은 그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국제정치에서도 복수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잔인한 학살을 유발하며, 피해국인 경우 국가 간 합의에 의하여 사과와 배상, 보상이 이루어져도 복수심이 작용하여 끝없는 사과와 보상, 배상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가해자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반성을 요구하여 비극적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 반성이 삼대에 걸친 반성과 끝없는 배상이어야 한다면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그 국가 간 관계는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되기가 힘들다. 이에 더해 피해국이 가해국에 대하여 처벌과 보상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그 결과는 양국 간의 끊임없는 반목에 더해 피해국의 의존성과 허약함만을 키우게 된다.
예컨대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원조나 보상, 배상에만 의존하다 보면 진정 벗어나야 할 빈곤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래서 가해국에 반성과 보상, 배상은 응당 요구하여야 하지만 진정 '우아한 복수'는 끊임없는 요구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위치로 나를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우아한 복수가 이루어지면 반목의 국가 간 관계를 넘어 상생의 미래로 국제정치가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국을 계속 자극하는 소녀상 대신 예를 들어 일본의 전자산업을 넘어선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전자 건물 같은 것을 일본대사관 앞에 세우는 것이 선의의 경쟁을 자극하는 미래지향적인 우아한 복수가 아닐까 싶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