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서울의 밤
언제부터 쓰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식당, 술집, 포장마차 등이 가게 앞 길거리나 테라스 등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해 영업하는 것을 우리는 '야장'(野帳)이라고 불렀다. 굳이 한자로 풀자면 들 야(野), 휘장 장(帳)을 써서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국립국어원 분류에는 없는 일종의 '속어'라고 보면 된다.
야장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어디서나 봄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단속의 대상이 되더니 이제는 특별한 이유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힘든 옛 정취가 됐다.
그런데 단속반을 피해 골목에 테이블을 내놓던 '야장'이 서울의 공식 브랜드가 될 예정이다. 민선 9기를 맞은 서울시가 첫 정책 의제로 '서울의 밤'을 전면에 내걸어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골목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서울시 경제를 살리고 양극화를 개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해결책으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야간경제 활성화다.
서울시가 밤에 승부를 거는 배경에는 밤 풍경의 구조 변화가 있다. 서울의 밤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것은 회식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었던 노래방은 새로 문을 여는 곳보다 닫는 곳이 갑절 많은 업종이 된 지 오래다. 동네 술집의 숫자도 매년 줄어들어 요즘은 골목길 어귀에서 술 파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주 52시간제와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2차 문화'가 사라졌고, 코로나는 남아 있던 회식 문화까지 걷어 갔다. 젊은 세대의 음주량도 꾸준히 줄고 있다. 그 결과 유흥 목적 상업시설은 폐업이 늘어난 반면, 복합문화공간과 웰니스 시설 수요는 빠르게 늘었다. 수년간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서 야간경제 인프라의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작금의 결론이다.
새 수요도 밀려온다. 올해 방한 외래관광객은 사상 처음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 대부분이 서울을 거쳐 간다. 경복궁도 좋고 박물관도 좋지만 밤에 갈 곳이 없어 숙소로 돌아가던 관광객의 소비를, 쇠락한 골목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비단 위에 꽃을 더 놓는 격이다.
서울이 밤에 베팅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문을 연 밤도깨비야시장은 연간 수백만명을 모으며 서울의 밤 명물이 됐다. 코로나로 잠시 멈춰 섰다가 2022년 '한강달빛야시장'으로 축소 부활한 바 있다. 당시 푸드트럭 이벤트로 사람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어도 그 열기가 골목상권까지 번졌는지는 미지수였다. 이번에는 10년 전과 달리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와 상권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정책의 행간에서 읽힌다.
시야를 넓히면 서울은 후발주자다. 암스테르담은 2003년 세계 최초로 '밤 시장(night mayor)'을 뽑았고, 런던은 2016년 나이트차르를, 뉴욕은 2017년 '야간관광 사무국'(Office of Nightlife)을 만들었다. 밤을 치안과 단속의 시간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시간으로 다시 정의하는 흐름에 서울은 20여년 늦게 올라탄 셈이다.
남는 물음은 하나다. 활짝 열어젖힌 야간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누가 밤잠을 자지 않고 돌볼 것이냐는 문제다. 야장 골목의 소음과 쓰레기는 지금도 구청 민원 창구의 단골손님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내놓은 답은 '상생'이다. 달빛야장 상인은 소음 차단과 정시 마감 등을 약속하는 상생협약을 주민과 맺어야 하고, 갈등은 상인과 주민이 참여하는 상생협의체가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상권별 지원금이 걸린 만큼 규범을 어기면 잃을 것도 생긴다. 결국 이 실험의 성패는 단속 없이도 굴러가는 밤의 질서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렸다. 오 시장이 스스로 정한 시한은 6개월, 로드맵의 끝은 2028년이다. 그때 25개 자치구의 밤이 실제로 달라져 있는지가 5선 시장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