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칼럼] '침묵의 재난' 막는 파수꾼
한여름 밤, 창문을 활짝 열어 두어도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방이 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논밭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이 계시고, 한낮의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숨 가쁘게 달리는 배달 노동자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에어컨 아래에서 무심히 흘려보내는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몸이 식을 틈 없이 열이 쌓여가는 하루다. 그렇게 쌓인 열은 예고 없이 사람을 쓰러뜨리곤 한다. 폭염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침묵의 재난'이다.
올해 유럽은 5월부터 이어진 기록적인 더위로 고통받았다.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에서 40도를 넘는 기온이 관측됐고 프랑스에서는 강물 온도가 높아져 원자력발전소가 멈추기도 했으며, 더위가 지나간 자리에는 적지 않은 인명피해가 남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7월 22일까지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4.2일로 역대 10위, 열대야일수는 5.5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폭염은 이제 견디면 지나가는 여름철 불편함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아야 할 재난이 됐다.
기상청이 올해 6월 1일부터 '폭염중대경보'와 '열대야주의보'를 새롭게 도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염중대경보는 체감온도 38도나 기온 39도 이상이 예상될 때 발표하는, 건강한 성인도 위험한 상황임을 알리는 국가 차원의 가장 강력한 경고다. 열대야주의보는 밤사이 몸이 회복되지 못하면 다음 날 폭염 피해가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리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특보를 신설한 것만으로 국민의 안전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특보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뿐 기상청의 정보와 관계부처·지방정부의 대응,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하나로 이어질 때 비로소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지난 12일 오전, 경북 경산시와 포항시에 첫 폭염중대경보가 발표되자 범정부 총력대응 체계가 즉시 가동됐다. 행정안전부는 현장상황관리관을 파견해 현장 조치를 점검했고, 경산시와 포항시는 재난도우미를 투입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의 안부를 살폈다. 고용노동부는 옥외작업 중지를 전파했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한낮 농작업 중단을 권고했다. 질병관리청과 기후에너지환경부도 온열질환 예방정보 제공과 에너지바우처 지원에 나섰다. 하나의 특보가 중앙부처는 물론 마을 단위까지 함께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이제 국민 여러분의 행동이 남았다. 폭염중대경보가 발표되면 '중단·이동·확인'을 실천해 주시기 바란다. 야외활동과 작업을 즉시 멈추고(중단), 무더위쉼터 등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이동), 가족과 이웃 그리고 차 안에 남겨진 생명을 살피는 것(확인)이다. 주의보와 경보 단계에서도 물·그늘·휴식이라는 기본수칙을 지키고, 무더위쉼터와 재난도우미에 의한 안부 확인, 냉방비 지원 등 각 기관의 맞춤형 대책을 적극 활용해 주시기 바란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국민이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신뢰도 있는 폭염정보를 적시에 전달하고자 노력하겠으며, 그 정보가 정부의 총력대응을 여는 확실한 시작점이자 국민의 안전한 선택을 돕는 나침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무사하게 이 여름을 건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미선 기상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