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장마당과 시장경제

파이낸셜뉴스
박경호 생활경제부 기자
박경호 생활경제부 기자

"이 에센스가 아랫동네에서 제일 잘 팔립네다. 동무를 위해 특별히 깎아 드리겠습네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가 북한 장마당 화장품 상인에게서 듣는 대사다. 극중에서는 주인공 회사의 제품이 북한의 장마당까지 유통된다는 코믹한 연출로 쓰였지만, 이는 북한 사회 깊숙이 침투한 시장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북한에 시장경제가 도입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 배급망이 붕괴하며 물물교환이 싹텄다. 2003년에는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전격 합법화하며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쌀과 생필품 가격은 국가 통제 가격이 아닌,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형성됐다. 공식적으로는 북한 당국에서 정한 가격이 있다. 하지만 실제 시장가격으로 북한 주민들은 거래하고 있다. 주민들이 상품을 달러로 거래하며, 전형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이 북한 사회 음지에서 자라났다.

이후의 전개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 다르지 않다. 물건을 파는 전문적인 도소매 상인이 분화하기 시작했다. 사유재산을 축적한 이들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본을 모아 고리대금업 등 금융 사업에까지 손을 뻗친 이른바 '돈주'라는 신흥계급마저 등장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가격 결정 과정에서 외부 권력이 개입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억누르면 필연적으로 시장 비효율이 발생한다.

강제된 가격 인하는 단기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을 더는 듯 보인다. 하지만 기업의 효용은 더 크게 감소해 사회 총효용은 줄어든다. 한계에 달한 공급자가 결국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전가하게 되고, 장기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내 식품산업은 시장경제 원리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고유가·고환율로 인해 극심한 원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와 정치권에 의해 기업들은 가격을 인상하기는커녕 도리어 앞다퉈 인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마저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의 근간인 수요·공급 원칙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보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비틀어 쥐어짜낸 가격 통제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격 억제를 통한 생색내기 대신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를 위해서라도 자율적인 가격 결정 기능이 온전히 회복되어야 할 때다.

[email protected] 박경호 기자


#사랑의 불시착 #윤세리 #장마당 #시장경제 #북한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