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근무하면서 참으로 풀기 어려운 사건들을 자주 만났다. 아주 복잡한 재산분할 사건도 있었고, 감정인 선정 절차부터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극도로 대립되어 절차 진행이 어려웠던 성년후견 사건도 있었으며, 사실관계가 얽히고설켜 객관적인 사실관계 파악 자체가 어려운 아동학대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재판 현장에서 가장 큰 부담을 느꼈던 사건의 유형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 부부의 관계가 정말 끝났는가”를 판단해야 하는 사건들이다. 이런 유형의 이혼 사건은 겉으로 보면 단순해 보인다. 헤어지겠다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다는 사람 사이에서 법이 결론을 내리는 일.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부부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는지, 아직 함께 살아볼 의미가 남아 있는지, 그 경계에 선 사건들은 판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파탄이고, 어디부터가 회복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그 선을 긋는 일은 숫자처럼 명확하지 않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가정법원 판사로 근무하면서 ‘재산분할 사건이 가장 복잡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을 하나하나 특정하고, 각 재산의 형성과 유지 과정에서 누구의 기여가 얼마나 있었는지 따져야 하니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긴 했었다. 하나하나의 재산에 대해 양 당사자가 치열하게 다투게 되면 각 개별 재산에 대한 다툼이 마치 하나의 민사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사건들은 기록도 꽤 두껍기도 하다. 그런데 재판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재산분할은 오히려 어느 정도 매뉴얼대로 처리 과정이 익숙해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축적된 판례가 다수 있고, 등장하는 이슈들이 거의 대동소이하여 사실관계만 꼼꼼히 정리하면 결론의 틀은 어느 정도 보인다. 처음에는 까다롭게 느껴졌던 부동산, 예금, 보험금, 퇴직금, 현물, 비상장 주식 등에 대한 재산분할 과정도 시간이 지나면 판단에 필요한 법리 등이 금세 익숙해진다.
반면 부부의 파탄 여부는 그렇지 않다. 한쪽은 이미 끝났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기록을 충분히 읽어본 어느 날은 “이 정도면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가도 다음 날 기록을 다시 보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판사 혼자서 며칠 밤을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바로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다. 그래도 합의부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세 명의 판사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할 수 있으니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도 그 판단에 대한 부담이 조금은 나뉜다. 그러나 단독 판사로 사건을 처리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결국 마지막 판단은 오롯이 한 사람의 몫이었다. 동료 판사들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구해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제각각이었다. 애초에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리는 사건이었다면 고민이 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유형의 사건이 있다. 바로 서로 양육권을 가지겠다고 하는 사건들이다. 사실 양육권을 서로 가지지 않겠다는 사건도 매우 힘들긴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실무상 그리 흔치 않다. 양육권에 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는 사건들은 정말 판사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누가 더 좋은 부모인지, 누가 더 안정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아이의 삶에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혼 소송 중인 부모는 누구나 자신의 양육 능력을 증명하려 애쓴다. 수백 쪽이 넘는 양육계획서가 제출되기도 하고, 엄청난 양의 사진과 동영상 자료 그리고 화려한 프리젠테이션이 동원되기도 한다. 양육을 향한 진심과 경쟁심, 사랑과 자존심이 한꺼번에 기록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법원은 미성년 자녀의 성별과 나이,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지, 경제적 능력, 실제 양육 방식의 적절성, 부모와 아이의 친밀도, 아이의 의사까지 모두 살펴야 한다. 결국 판단의 핵심 기준은 ‘아이의 성장과 복지에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되는가’인데 이러한 추상적 기준이 실제 재판 실무에서 쉽사리 적용되기 어려운 사건들도 꽤 많았다.
특히 본의 아니게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싸움이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소송 중 아이를 탈취하거나 아이 앞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방법으로 아이의 마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전쟁을 겪은 병사와 같은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들은 재판 후 남남이 되겠지만 아이에게 각 부모는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에 양육권 다툼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양육권과 관련하여 아직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결혼한 지 10년쯤 된 부부였다. 남편의 해외 출장이 잦았음에도 두 사람은 결혼 초기에 아들을 얻었다. 겉으로는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성격 차이와 관계의 균열은 점점 커졌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양육권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둘 다 이혼 자체는 동의했지만 아이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사조사와 기록을 통해서는 아이가 남편에게 더 큰 애착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양육권을 주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부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남편은 아이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혼 초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간 사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고, 그 결과로 낳은 아이가 바로 양육권 다툼의 대상이 된 바로 그 아이라는 고백이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부인의 황당한 주장을 전혀 믿지 못한 채 유전자검사를 신청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냉정했다. 남편과 아이 사이에는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 순간 법정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진실을 확인한 남편은 큰 충격을 받은 채 한동안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출석한 그는, 그 아이가 비록 자신의 친자는 아니었지만 10년 동안 가슴으로 키운 자식이므로 이제는 단 하루도 떨어져 살 수 없다면서 울먹였다. 그러나 법은 비정한 방식으로 경계를 긋는다. 친부가 아닌 이상 그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이의 양육권은 친모에게 갈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충격을 안고 살게 되었다. 진실을 알게 된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10년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친자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남편은 얼마나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까.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쪽이 먹먹해진다.
가정법원 사건들은 법리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록 속에는 사람의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는 오래된 사랑과 미움, 기대와 배신, 책임과 후회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가정법원 판사는 종종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많다. 오랫동안 가사 사건을 담당하면서 나는 '현실은 때때로 영화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법은 선을 긋는 일을 하지만, 그 선 위에 서 있거나 그 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그 선 하나로 정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매번 선을 그어야 했던 것, 그것이 바로 가정법원 판사의 숙명이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