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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박쥐, 한겨울에도 사냥 나선다… 기후변화 '조기경보' 가능성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12월 14일 밤 먹이활동 신호 포착
1~2월에도 포근한 밤 산발적 활동
평굴 관박쥐 최대 1900마리 동면
구린굴은 최대 1500마리 출산·포육
동굴은 잠자리·계곡과 숲은 먹이터
초음파 분석해 장기 생태지표 구축

제주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 평굴에서 관박쥐들이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다. 평굴은 겨울철 관박쥐가 최대 약 1900마리 모이는 주요 동면처로 조사됐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 평굴에서 관박쥐들이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다. 평굴은 겨울철 관박쥐가 최대 약 1900마리 모이는 주요 동면처로 조사됐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한라산에 사는 박쥐가 한겨울에도 기온이 높은 밤이면 동면에서 깨어나 먹이 사냥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겨울철 동면을 이어가는 한반도 육지 박쥐와 다른 활동 양상으로, 겨울 기온 변화에 따른 박쥐의 생활사 변화를 살피는 생태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4일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한라산 동굴 박쥐 생태조사' 학술용역 중간 분석에서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 구린굴과 평굴, 관음사 계곡 일대 박쥐의 겨울철 먹이활동과 계절별 서식지 이용 특성이 확인됐다.

조사는 2023년부터 진행한 한라산 장기 생태모니터링의 연장선이다. 연구진은 박쥐를 직접 포획하지 않고 초음파를 기록하는 생물음향 모니터링과 현장조사를 병행했다.

관음사 계곡에서 수집한 초음파 가운데 박쥐가 먹이를 잡기 직전 내는 '먹이활동 신호'를 분석한 결과, 12월에는 비교적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먹이활동 신호가 확인된 밤은 12월 14일이었으며 1월 1일, 2월 2일에도 산발적인 활동이 기록됐다. 기온이 오르는 3월에는 11일 밤으로 다시 늘었다.

먹이활동 신호는 박쥐가 곤충에 가까워질수록 초음파 발신 간격을 빠르게 줄이는 소리다. 연구진은 일반적인 이동 신호와 구분되는 이 초음파를 분석해 실제 사냥 여부와 먹이터 이용 빈도를 확인했다.

겨울에도 일시적으로 먹이활동이 나타난 배경으로는 제주의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제시됐다. 세계유산본부는 기온과 동굴 내부 환경, 먹이활동 자료를 장기간 함께 분석할 계획이다.

계절에 따라 동굴과 계곡의 쓰임이 달라지는 특성도 확인됐다. 평굴은 겨울철 관박쥐가 최대 약 1900마리 모이는 주요 동면처로 조사됐다.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인근 해발 700m에 위치한 용암동굴인 '구린굴' 천장에 박쥐가 매달려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평굴과 구린굴, 관음사 계곡을 대상으로 박쥐의 계절별 서식지 이용 특성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인근 해발 700m에 위치한 용암동굴인 '구린굴' 천장에 박쥐가 매달려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평굴과 구린굴, 관음사 계곡을 대상으로 박쥐의 계절별 서식지 이용 특성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구린굴은 봄과 여름 관박쥐·긴가락박쥐·큰발윗수염박쥐가 최대 약 1500마리 모여 새끼를 낳고 기르는 출산·포육 장소로 확인됐다. 관음사 계곡과 주변 산림은 동굴에서 생활하는 박쥐가 곤충을 사냥하는 주요 먹이터로 이용됐다.

종별로 계곡을 찾는 시기도 달랐다. 긴가락박쥐는 봄과 가을에 관음사 계곡 이용이 늘었고, 큰발윗수염박쥐는 새끼를 키우는 5~6월에 가장 높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출산과 포육 과정에서 먹이 수요가 커지는 시기와 계곡 이용이 맞물린 결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조사 결과는 박쥐 보호 범위를 동굴 입구와 내부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여준다. 동굴이 동면과 출산 공간이라면 인근 계곡과 숲은 먹이를 확보하는 생활공간이다. 동굴·산림·계곡을 하나의 생태 연결망으로 묶어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유럽 박쥐종을 중심으로 개발된 자동 음향 식별 알고리즘을 국내 박쥐의 초음파 자료와 현장조사 결과에 맞게 보정하고 있다. 먹이활동 신호의 빈도를 활용해 계곡별 이용 강도와 서식지 상태를 비교하는 정량 지표도 마련할 계획이다.

세계유산본부는 용역이 끝날 때까지 계절별·종별 음향자료와 동굴 내부 온도·습도, 외부 기상자료를 함께 분석한다. 최종 결과는 동면과 출산·포육 시기의 동굴 관리방안, 동굴·산림·계곡을 잇는 보전체계, 국내 박쥐 장기 음향모니터링 기준을 세우는 데 활용된다.

연구책임자인 김선숙 공간생태모니터링네트워크 박사는 "생물음향 모니터링은 박쥐와 서식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계절별 활동을 장기간 기록하는 방법"이라며 "한겨울의 간헐적 먹이활동은 제주 박쥐의 생태적 특성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활사 변화를 살펴볼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2023년부터 축적한 자료를 토대로 한라산 박쥐의 계절별 생활과 서식지 이용 특성을 확인했다"며 "최종 연구까지 자료를 검증해 세계자연유산의 과학적 보전·관리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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