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AI 대전환으로 '비욘드 반도체', 구호로 끝나선 안돼
위기의 전통 제조업, AI와 접목
숫자 채우기 아닌 실질 성과 내야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구조 혁신 청사진을 6일 발표했다. 반도체 중심의 성장동력을 철강·석유화학·조선·자동차·바이오 등 주력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비욘드(Beyond) 반도체' 전략이 핵심이다. 철강에는 인공지능(AI) 제조공정과 수소환원제철을 도입하고, 석유화학은 AI 기반 공정혁신과 사업재편을 추진한다. 조선에는 용접로봇 등 휴머노이드를 투입하고 자동차에는 AI 팩토리와 자율주행 기술을 확산한다. 10대 주력산업에 특화한 로봇을 개발하고 연간 1000대 규모의 AI 로봇을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방향은 옳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업황에 따라 수출과 성장률이 크게 출렁이는 구조인데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투자 부진으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조업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AI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제조 기반과 공정 데이터를 갖춘 한국은 AI를 실제 생산현장에 접목해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AI 산업의 새로운 승부처인 피지컬 AI 주도권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AI만 입힌다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이 갑자기 성장산업이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석유화학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설비 감축과 사업재편이 시급하다. 철강은 중국의 저가 공세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탄소전환 비용, 여기에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까지 겹쳐 3중고에 시달린다. 자동차 역시 전기차 중심으로 산업 질서가 급변하면서 여러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경쟁력을 잃은 설비와 사업을 그대로 둔 채 AI 전환만 서두른다면 구조조정을 늦추고 부실기업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산업별 구조조정 원칙을 분명히 하고 혁신 시간표를 다시 짜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주력산업 개편 작업은 속도가 더디고 지원책은 빈틈이 많다. 석화산업의 경우 일부 지역의 과잉설비 감축은 평가할 만하지만 실질적 성과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다. 철강 산업은 더하다. 구조조정이 하세월이다. 설비감축 계획과 저탄소·고부가 지원 설계도를 내놔야 한다. 차산업에서도 미래차 전환을 위한 인력 재교육, 재배치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정책 간 엇박자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비욘드 반도체'를 외치면서 정작 '한국판 IRA'라 불리는 생산세액공제 대상엔 전기차와 저탄소 철강, 재생플라스틱 등을 제외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AI 로봇 부품에는 국내 생산을 장려하는 세제 혜택을 주면서 기존 주력산업은 뺀 것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산업을 지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주력산업을 AI 고부가 산업으로 재편하면서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한 세제 지원에선 제외한다면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AI 전문인력 20만명 양성이나 청년 일자리 20만개 같은 목표도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선 안 될 것이다. 과거에도 정부가 일자리와 인력양성 목표를 앞세웠지만 산업 현장의 수요와 동떨어져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대학과 직업훈련기관이 제대로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제조업 근로자들이 AI 전환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육, 노동시장 시스템도 전면 개선돼야 한다. '비욘드 반도체'가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인내와 끈기로 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