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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국가' 선언 앞에 놓인 세 가지 선결과제[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역별 차등요금·재생에너지·신규원전…이름만 바뀐 기존 과제들
요금은 낮추고 싶은데 한전 적자는 어쩌나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공론화 시한은 단 두 달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후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후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하반기 정책 슬로건으로 '전기국가(Electro-state)'를 꺼내들었다. 지난 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미국은 칩은 있지만 전력이 불안정하고, 중국은 전력은 있지만 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한국은 칩과 전력을 함께 갖춘 경쟁력으로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뜯어보면 '전기국가'는 새 사업이라기보다, 지역별 차등 요금제·AIDC 전용 요금체계·재생에너지 100GW·신규 원전 공론화·HVDC 실증사업 등 상반기부터 추진돼온 과제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은 성격이 강하다. 다만 이 구상이 슬로건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풀어야 할 선결과제가 있다. 전기요금을 낮추면서 한전 적자는 어떻게 메울지, 원전과 재생에너지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송전망이 제때 받아낼 수 있을지다.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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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을 낮추면서 한전 적자는 어떻게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선결과제는 △지역별 차등 요금제의 딜레마 △전원 구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 △물리적 인프라의 속도로 요약된다.

기후부는 송전망 이용 비용과 지역별 전력 자립도, 국가균형발전을 반영해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누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명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다. 철강·석유화학처럼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업종의 요금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인데, 김성환 장관 스스로도 "마음 같아서는 중국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낮추고 싶다"면서도 "한전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하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전력의 누적 부채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권역·업종에 요금을 깎아주면 그 부담은 결국 한전 재무 구조나 다른 소비자층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중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 철강·석유화학 등 수출 경합 업종에는 이 격차가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오랜 불만이었다. 가정용 요금은 이번 차등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산업용 요금 인하분을 메울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8월 셋째 주로 예정된 공청회에서 이 재원 조달 방안과 권역 구분 기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되느냐가 첫 시험대다. 여기에 요금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수도권이나 비수혜 권역 기업·지자체의 반발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남은 과제다. 인공지능데이터센터(AIDC) 전용 요금체계 신설도 같은 맥락의 과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 산단과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시설에 별도 요금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기준을 너무 낮게 잡으면 한전 재정에 부담이 되고 너무 높게 잡으면 애초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하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요금 인하 폭과 재원 조달 방안을 동시에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하는 이중 과제인 셈이다.

월성원전. 연합뉴스
월성원전. 연합뉴스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시간은 두 달뿐

전원 구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도 해결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100GW 확대와 신규 원전·SMR 도입이라는 두 방향이 '전기국가' 안에 나란히 담겨 있지만, 정작 이 둘의 비중을 어떻게 조율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후부는 이번 주 공론화 방식을 정하고 다음 주부터 국민 의견 수렴을 시작해, 그 결과를 10월까지 마련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역산하면 실질적인 공론화 기간은 두 달 남짓이다. 원전 확대론과 재생에너지 중심론 사이의 이견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뿌리 깊은 논쟁인데, 이를 두 달 안에 국민 의견 수렴까지 마쳐 전기본에 반영하겠다는 일정 자체가 빠듯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론화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거나, 반대로 일정에 쫓겨 결론을 서두르면 어느 쪽이든 이후 논쟁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실제로 호남권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이미 태양광 접속 대기 용량이 수천MW 규모로 쌓여 있어, 재생에너지 설비를 더 늘리기 전에 계통 보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원전이든 SMR이든 부지 선정부터 인허가, 착공, 준공까지 통상 10년 안팎이 걸리는 만큼, 이번 공론화에서 신규 원전 확대로 결론이 나더라도 그 효과가 실제 전력 공급으로 나타나는 시점은 이번 정부 임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두 진영 모두 '지금 결정해도 몇 년 뒤에나 체감되는 정책'이라는 공통된 시차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송전탑 전경. 연합뉴스
송전탑 전경. 연합뉴스

전력망은 속도를 낼 수 있나
물리적 인프라의 속도도 해결해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은 광업·비철금속 등 전통 산업에 비해 전력 의존도가 최대 8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까지 가세하면서, 기업의 투자 결정에 따라 특정 지역의 전력 수요가 수년 내로 급증하는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송전선로 건설과 변전소 인허가는 통상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기후부가 송전망·배전망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보강하고 양수발전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시차를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깝다. 호남 반도체 산단의 초기 전력 공급을 인근 신장성·신광주 송전선로에서 끌어오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도, 신규 송전선로를 새로 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HVDC 실증사업이나 전력 기자재 수출산업 육성 같은 중장기 과제는 방향성은 맞지만, 당장 올해·내년 늘어날 전력 수요를 감당할 해법은 아니다. 결국 '전기국가'가 표방하는 안정적 전력 공급이 현실화하려면, 인허가 절차 단축이나 주민 수용성 확보처럼 정치적으로 더 까다로운 문제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

선결과제를 풀지 못하면 슬로건으로 남는다

'전기국가'는 방향 제시는 명확하다. AI 시대에 전력이 반도체만큼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라는 진단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요금 재원, 전원 구성, 인프라 속도라는 세 가지 선결과제 모두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라는 데 있다. 세 선결과제는 서로 독립적이지도 않다. 요금 차등화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전제돼야 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이든 재생에너지든 신속한 설비 확충이 필요하며, 설비를 늘리려면 다시 송전망이라는 물리적 병목을 풀어야 한다. 한 과제에서 지연이 생기면 나머지 두 과제의 실행 속도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8월 셋째 주 공청회와 10월 12차 전기본이라는 두 개의 임박한 일정이, 이 슬로건이 구체적 실행 계획으로 착지할지 아니면 다음 정부 업무보고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재포장될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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