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포럼] 해석의 시대와 단단한 진실

파이낸셜뉴스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정보통신 매체가 발달하면서 소셜미디어가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주장과 보도 속에는 선동적 정보도 적지 않다. 하나의 사태를 두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관점들이 공존하는 지금, 새삼 묻게 된다. 진실은 존재하는가.

고대 문화는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전제로 성립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것을 모방한 그림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대 들어서는 달라진다. 칸트는 세계의 본질인 물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감각의 선험적 형식과 오성의 선험적 범주를 통해 구성된 현상만을 인식하고,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 이러한 현상 세계에 대한 인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니체에 이르면 절대적인 진리 자체가 부정된다. 진리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에서 관점에 따라 구성될 뿐이고, 이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세계는 오로지 다양한 해석과 관점의 산물일 뿐이다. 그가 말한 '힘에의 의지'가 함축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객관적인 진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라는 명제는 객관적 진실이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부주의인지, 도로 관리의 부실인지를 따지는 순간 우리는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언어와 맥락, 세계관이 개입해 일종의 텍스트를 만들어낸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데리다의 테제도 이를 가리킨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언어와 기호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달되어 이해된다.

푸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자체를 권력관계가 만든 '담론'의 산물로 본다.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나누어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근대가 시작되는 17세기 유럽에서 지배계층은 근면과 규율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는데, 이에 부합하지 않는 영역을 비정상으로 여기고 사회에서 격리시켰다. 그래서 부랑자와 빈민, 광인을 가두는 시설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훗날 정신병원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조차 권력과 담론의 작용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은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해석의 과잉'이 극단화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객관적인 진실과 단순한 의견, 왜곡된 해석이 뒤섞이면서 허위와 진실의 경계는 흐려지고, 공동체의 신뢰 또한 흔들린다. 물론 표현의 자유나 해석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실을 비틀어 허위의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다.

해석이 과도한 주관성에 매몰되거나 특정한 이해관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시대라 해도 해석은 단단한 '진실'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하며, 인과관계의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 시대일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다. 다양한 관점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진실과 분리되는 순간 공동체의 결속은 흔들린다. 탈진실의 혼돈 속에서도 최소한의 이성을 지켜야 한다.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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