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베트남의 親中 행보
10년 전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였다. 같은 반에 베트남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의 형제들도 베트남인이나 중국 내 소수민족인 경족과 결혼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그 집안을 두고 '동양판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이라고 농담했다. 정작 친구는 "전쟁 때문이라면 베트남은 한국이랑도 사이가 안 좋아야 하는 것 아니야?"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노이에서 생활하며 이 말이 자주 떠오른다. 베트남은 '2045년 고소득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원전, 고속철, 6G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최대 경쟁자는 중국이다.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의 전망은 대체로 낙관적이다. "중국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핵심 인프라 사업까지 중국에 내주겠느냐"는 것이다. 또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주변국에서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모습을 지켜본 만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취재할수록 이 분석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정부 출범 이후 첫 국빈방문 정상으로 베트남을 찾았지만, 그보다 일주일 앞서 또럼 서기장과 지도부, 주요 지방성 지도자들이 총출동해 중국을 찾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와 가장 먼저 만나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양국 관계를 재확인했다. 특히 방중 일정에서는 중국 철도당국 관계자들과 함께 고속철도를 두 차례나 체험했다. 럼 서기장이 매우 만족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하노이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에서 중국어과의 입학성적이 한국어과를 앞섰다. 하노이 시내 서점의 어학코너에서도 중국어 교재가 외국어 학습코너 베스트셀러를 석권하고, 어학원에는 중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물론 양국은 1979년 전쟁을 치렀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도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중국을 경계하는 것과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 중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과 경제적 연결고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영향력 확대는 경계한다. 이것이 베트남이 말하는 '대나무 외교'의 실제 모습이다.
한국 기업과 당국은 베트남 인프라 수주전에서 '베트남은 중국을 싫어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이 싫은 베트남'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경쟁해도 '한국을 선택해야만 하는 베트남'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