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광복 81년, 골목이 지켜온 시간
[파이낸셜뉴스] 8월 부산은 2개의 기억을 품고 있다. 하나는 광복의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이 도시가 걸어온 신산한 세월이다. 피란수도의 혼돈 속에서, 수출입 관문의 분주함 속에서 부산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삶을 일으켜 세웠다. 그 최전선에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국제시장의 포목점이, 자갈치의 좌판이, 동네 어귀의 국밥집이 시민의 하루를 먹이고 입히며 이 도시의 81년을 함께 써 내려왔다. 부산의 근현대사는 관공서 기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가게 낡은 간판과 손때 묻은 계산대 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지켜냄'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라를 지켜낸 것이 앞선 세대의 헌신이었다면, 그 나라의 일상을 지켜온 것은 골목의 성실한 가게들이었다. 오래된 가게 하나가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에 닫는 일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그 성실한 반복이 수십 년 쌓이면 한 도시의 역사가 된다. 그래서 골목의 오랜 가게를 지키는 일은 곧 도시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달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백년소상공인 300개사를 새로 지정했는데, 전국에서 747개사가 신청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특히 이번 지정에서 비수도권 업체가 60%를 넘어, 지역의 오랜 가게들이 그만큼 저력을 인정받았다는 점도 반갑다. 부산에서도 백년가게 11개사와 백년소공인 5개사, 모두 16개사가 새로 이름을 올려 백년가게 누적 93개사, 백년소공인은 56개사로 늘었다. 남구의 안강식당도 이번 백년가게 지정 업체 중 하나다. 지난 1991년 문을 연 이래 30여년간 한결같은 맛을 지키며 이웃과 나눔을 실천해 온 곳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업력이 아니다. 수천 번의 새벽 장보기, 수만 번의 손님맞이가 쌓여 만들어진 신용이며, 그 신용이야말로 지역경제의 가장 단단한 자산이다. 유행이 바뀌고 상권이 흔들려도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 가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오래 버틴 가게일수록 골목의 이웃 가게에 손님을 나눠주고 상권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를 발굴하고 기록하며 응원하는 것이 백년소상공인 정책의 출발점이다.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이 오래된 가게들이 백년을 넘어 이어지도록, 그리고 오늘 문을 여는 젊은 가게들이 내일의 백년가게로 자라도록 곁에서 함께하겠다. 부산시와 기초자치단체, 관계기관과 협력해 백년소상공인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판로를 찾는 가게들이 더 많은 손님과 만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아울러 백년가게가 지역 관광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부산을 찾는 발걸음이 골목까지 닿을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여름, 시민 여러분의 발걸음이 오래된 골목으로도 이어지면 어떨까 한다. 가족과 함께 백년가게의 문을 열고 수십년 묵은 손맛을 경험하며 그 가게가 지나온 시간에 잠시 귀 기울여보는 것이다. 그 한 끼가 이웃 소상공인에게는 큰 힘이 된다. 또한 부산의 시간을 다음 세대로 잇는 일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산의 어느 골목에서는 다음 백년의 역사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광복 81년의 8월, 그 골목에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발걸음이 함께하길 기대한다.
이청일 부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