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단독] 비축기지 없어 민간창고에 보관... 농산물 가격안정기금 재정 열악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공공 비축기지 신설 사실상 철회
공공 35%·민간 64% 불균형 심화

[단독] 비축기지 없어 민간창고에 보관... 농산물 가격안정기금 재정 열악

정부가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수급 조절을 위한 핵심 인프라 '공공 농산물 비축기지' 신설 계획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기 할인지원 등 현금성 물가 대응과 농산물 수매에 대규모 나랏돈을 쓰면서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재정이 흔들리자 인프라 구축을 미룬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수년째 비축기지 신설 필요성이 지적됐지만 국가 식량자원이 정부 창고 대신, 민간 창고 '더부살이'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실이 농식품부·한국농수산유통식품공사(aT)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공비축기지는 총 14개소다. 정부 8개소, aT 6개소로 aT가 총괄 운영한다. 국내산은 주로 수매를 통해 콩, 고추, 마늘, 배추, 무, 양파, 밀 등 9개 품목을 비축한다. 수입농산물은 저율관세(TRQ),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으로 수입비축을 통해 콩, 참깨, 멥쌀, 팥 등 7개 품목을 비축한다.

농식품부는 정부비축기지 신설을 보류했다. 지난해 3개소 신설 계획을 내놨지만 추진하지 않고 있다. 국제 곡물·운송비 상승 및 국산 콩 수매 확대로 지출이 급증했지만 비축농산물을 방출해 얻는 판매수입(공매)은 줄면서 농안기금 재정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안기금 지출은 2조3638억원이다. 이 가운데 농산물 수매·수입하는 비용인 '비축지원'에 가장 많은 9047억원이 들어갔다. 전년 대비 12.4%, 2021년 대비로는 84.2% 증가한 수치다. 반대로 농산물 판매수입은 6121억원으로 같은 기간 각각 5% 증가에 그쳤다.

기금 지출이 수입 보다 커진 상황에서 농축산물할인지원사업까지 올해부터 농특회계에서 농안기금으로 이관됐다. 비축기지 신설 사업 역시 재원을 농안기금 '비축지원'에 끌어서 쓴다. 정부가 단기 물가 진화용 예산을 농안기금에 얹어놓고, 정작 비축기지 사업은 기금 재정을 핑계로 잘라낸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재정 여건이 개선되면 신규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신규 3곳 이외에 2023년부터 추진한 강원 정부비축기지 1개소는 오는 2030년 준공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5년여 걸리는 비축기지 신설은 첫 걸음도 떼지 못했다. 신규 3곳 예비타당성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aT 비축기지 6개소를 매각한 자금으로 신규 비축기지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지만 6개소 모두 공공자산 매각 절차 5단계 중 매각계획 의결(1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비축 농산물의 민간 창고 저장 비중이 급증한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올해 6월 기준 비축기지 수매·수입 전체 물량 35만9470t 가운데 공공비축기지 저장은 14.8%, 민간은 85.2%다. 2022년 공공 35.8%, 민간 64.2%와 비교해 민간에 비축기지에 대한 의존도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민간창고에 내는 보관료는 2022년 43억원에서 지난해 212억원으로 늘었다. aT 관계자는 "늘어나는 농산물 보관은 민간 창고를 임대해 저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및 식량안보 측면에서 농산물 비축기지 확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할인지원, 할당관세 중심 농산물 물가 정책은 단편적이고 효과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춘수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할인지원 사업으로 소비자나 농가보다 대형 유통기업이 이득을 얻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공공비축미는 전체 쌀 소비의 17% 가량을 저장하지만 원예작물 경우 공공과 민간 통틀어 비축량은 전체 소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비축기지를 확대해 5% 정도 저장이 가능해야 기후위기 시대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최용준 농업전문기자


#공공 농산물 비축기지 #농안기금 #물가 진화용 예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