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권리 위에서 깨어난 국민과 주주

파이낸셜뉴스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남긴 말이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고 행사해야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갖고만 있다고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알고, 주장하고, 행사해야 내 것이 된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어 '혜택과 권리'를 알려줬다면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자신이 가진 권리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법과 제도가 보장한 권리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이 권리 위에 잠들어 있지 않은데도, 정작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를 믿고 투자하고, 기업을 믿고 주식을 샀지만 어느 순간 제도가 바뀌고 권리가 축소됐다고 통보받는 국민이 늘고 있다.

최근 세제개편 논란을 살펴보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국민의 자산형성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글로벌 투자 수요가 높아지는 이때에 정부는 신설한 '생산적 금융 ISA'의 투자 대상에서 해외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는 제외하기로 했다. 국내 주식,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등 국내로 투자를 한정해 자산형성의 사다리만 좁히는 모습이다.

월급 외 이자·배당·임대소득 등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현재 월급 외 소득이 연 2000만원 이상이면 추가 건강보험료를 내지만, 이 기준을 1000만원으로 낮추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투잡, 스리잡을 통해 부족한 소득을 메우려는 직장인들의 부담이 더해지는 구조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는데 부수입마저 막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정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속도조절에 나섰다.

월급만으로 자산을 불리기 어려운 시대다. 부업을 하고 재테크에 나서는 국민에게 추가 소득과 투자 기회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부의 이런 발상은 '부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부동산 정책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정부 정책을 믿고 계약하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어느 날 제도가 바뀌고 이를 소급 적용해 세금을 떼겠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동안 믿었던 정책에 대한 배신감은 상당할 것이다. 대표적인 게 '등록임대제도'다. 정책이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정책을 따른다. 그렇다면 정부 역시 국민이 정책을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과 주주의 관계 역시 다르지 않다. 기업은 투자하라고 한다. 주주는 기업을 믿고 돈을 넣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주주의 목소리가 빠진다면 주주에게 남는 것은 의무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을 보자. 회사가 좋은 성과를 내면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기업의 성과를 함께 만들어내고 자본을 댄 주주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는가. 대규모 투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투자는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투자 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됐나. 주주가 단순히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이 아니라 기업의 주인이라는 원칙은 경영학 원론에서만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권리는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국민은 자신의 권리를 알아야 하고, 주주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기업은 국민과 주주가 가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권리 위에서 깨어난 국민과 주주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email protected]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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