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막힌 트럼프, 北 통해 돌파… 강해진 김정은, 대화할까 [북미관계 급물살]
트럼프 "김정은, 대화 요청 응답"
2019년 회동이후 정상회담 기대↑
中·러 뒷배 든든한 金, 과거와 달라
비핵화보다 핵 위험관리 내세울 듯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대화 제안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7년 가까이 멈췄던 북미 정상외교가 다시 움직일지 관심이 쏠린다. 전날 한미연합훈련 축소 카드를 꺼낸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도 '응답'하면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움직임의 배경에는 이란전쟁 장기화라는 새로운 변수도 있다. 이란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외교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2026년의 김정은은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던 김정은과 다르다. 핵무력은 강해졌고 러시아·중국이라는 뒷배도 생겼다.
■이란서 막힌 트럼프, 북한서 돌파구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다시 김 위원장에게 손을 내미는 배경으로는 우선 이란전쟁이 꼽힌다. 장기전을 피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이란전쟁은 길어지고 있다. 17일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미국인의 80%가 전쟁 장기화를 예상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33%로 1·2기 재임 기간을 통틀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외신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에 대해 이란전쟁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려는 움직임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과 정반대의 정치적 그림을 만들 수 있는 무대다. 이란에서는 '끝나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정상 간 담판으로 핵위기를 관리하는 '딜메이커'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이날 북미 정상외교 재개 가능성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갑자기 김 위원장에게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직접 외교 재개에 관심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강해진 김정은
문제는 상대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축소라는 과거의 카드를 다시 꺼냈지만 상대인 김 위원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2018년 이후 핵·미사일 능력을 크게 강화했고 우크라이나전쟁을 치르는 러시아 지원을 계기로 모스크바와 군사협력도 확대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있다. 과거처럼 제재 완화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이 절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객원 선임연구원은 "미국과의 대화는 더 이상 북한 정권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 생명선과 정치적 보호막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놓치기 어려운 상대다. 스탠가론 연구원은 "김정은은 트럼프보다 더 협상할 의향이 있는 상대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재 완화나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원한다면 정상 간 직접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위험관리'로 바뀌나
두 정상이 다시 만난다면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을 협상할 것인지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핵·미사일 능력을 크게 키웠고 핵무력 보유를 되돌릴 수 없는 국가정책으로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번 협상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보다 핵·미사일 능력의 동결이나 제한,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현실적인 '위험관리'가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 역시 지난해 9월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망상적인 집착"을 버린다면 미국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이 확대된 핵무력을 협상 지렛대로 삼아 대규모 제재 완화 등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북한 핵을 단기간에 제거하기 어렵다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제한하는 합의를 통해 자신이 핵전쟁 위험을 낮췄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북미 정상외교 재개의 첫 번째 열쇠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엇이라고 답했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이 자신의 대화 제안에 응답했다면서 현재 상황을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채널로 어떤 내용의 답변을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만남에 긍정적인 의사를 전달했다면 2019년 판문점 회동 이후 7년 만에 두 정상이 다시 마주 앉을 가능성이 열린다. 반대로 핵보유국 인정이나 제재 완화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면 정상회담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