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플이 탐내는 中 CXMT
중국 반도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으레 따라붙는 말이 있다. '아직 몇 년은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최첨단 공정이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기준으로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은 세계 4위 업체다. 세계 D램 시장 점유율도 7% 수준에 그친다.
그래서일까. CXMT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국내에서는 '기술격차가 몇 년으로 줄었다'는 식의 분석이 뒤따른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직은 우리가 앞서고 있다"는 묘한 안심이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애플의 움직임은 이 같은 셈법에 의문을 던진다. 아이폰과 맥북 등에 CXMT의 D램 채택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다. 애플이 CXMT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뛰어난 메모리를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메모리 부족 상황에서 공급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결국 시장은 기술 경연장이 아니다. 중국 반도체가 반드시 한국보다 좋아야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하고, 필요한 물량을 제때 공급하며,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위협적인 경쟁자다.
CXMT가 애플의 실제 공급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후보군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는 이유다. 공급자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존 업체를 상대로 한 고객의 협상력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CXMT는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공격적 증설에 나서고 있다. 최첨단 제품에서는 뒤처지더라도 범용 D램부터 물량을 늘린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는 압박은 기술격차와 별개로 커질 수 있다. 과거 '메이드 인 코리아'가 치고 나갔던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술이 얼마나 앞서는 것과 별개로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물론 CXMT의 성장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기술과 수율, 장비 조달, 미국의 규제 등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아직 몇 년 차이'라는 말에서 안도하기에도 이르다. CXMT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월하는 날이 언제인지 묻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질문인지 모른다. 시장의 경쟁은 기술 순위가 뒤집히는 순간이 아니라, 고객의 옵션에 새로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email protected] 정원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