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카니 총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지난달 6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여름 햇살 아래 검은 제복의 해군 장병들이 군함 갑판을 메우고 있었다. 마크 카니 총리가 단상에 올랐다. 웃음기는 거의 없었다. 캐나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산사업, 60조원대 차세대 잠수함(CPSP)의 승자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의 이름이 호명되자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카니의 축하는 길지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였다. "우리는 선택지를 열어두고 있다." 추후 협상이 결렬되면 한화오션을 다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명할 수 있다는 비상구를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열어둔 것이다. "분명히 말하고 싶다. 매우 어렵고 박빙인 결정이었다." 승자를 축하하는 무대에서 굳이 패자의 이름을 다시 호명하고 재등판 여지까지 준 것은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흔들림의 시작은 지난해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빅토리아급 노후 잠수함의 퇴역을 앞두고 북극해 방어 공백을 걱정하던 캐나다가 CPSP 최종 후보 2곳을 발표했던 지난해 8월. 카니가 있던 곳은 독일이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그는 곧장 킬의 TKMS 조선소로 향했다. 독일 U보트 역사의 심장부이자 한국이 1980년대 말 잠수함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던 바로 그 조선소였다.
킬에서 본 것은 여전히 굳건한 잠수함 강국 독일의 기본기였을 것이다. TKMS는 유럽의 재무장 물결을 타고 수주잔고를 빠르게 불리고 있었다. 문제는 역설적으로 넘치는 일감이었다. 100년 전부터 보일러와 증기기관을 만들었던 이 좁고 오래된 공간의 생산라인은 과부하 일보 직전이었다. "제때 잠수함을 받을 수 있을까." 카니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거제로 간 것은 그로부터 두달 뒤다. 앞바다에는 불과 일주일 전 진수된 3600t급 장영실함이 떠 있었다. 카니는 직접 올라탔다. 장보고-III 최신형의 첫 번째 실물이었다. 리튬이온전지와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갖춘 바로 그 잠수함이다. 캐나다에 제안한 12척 함대의 모체였다. 한화는 이런 배를 해마다 찍어내듯 공급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카니는 그 순간 흔들렸을 것이다.
한국은 판세 뒤집기에 화력을 집중한다. 3000t급 도산안창호함을 진해에서 출항시켜 괌과 하와이를 거쳐 캐나다 서부까지 보냈다. 대형 잠수함의 장거리 운용능력과 성능을 태평양 위에서 직접 시연한 것이다. 아직 완성된 실물이 없던 TKMS의 차세대 212CD를 겨냥한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나토 우산을 쓰고 느긋해 보였던 독일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반격의 카드를 전면에서 꺼내든 인물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전 2년간 도매·수출상인으로 직업훈련을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후 변호사와 행정관료, 지방 내무장관을 거쳐 연방정부 국방장관까지 올랐다. 느리고 복잡한 연방군 조직의 수술을 단행한 개혁 정치인이기도 했다. 상업적인 무기 판매 전면에 정치인이 나서기를 꺼려온 독일의 오랜 전통도 뒤집었다. 한국의 속도전엔 독일·노르웨이가 이미 발주한 잠수함의 생산 순번을 캐나다에 내주는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대규모 산업협력 패키지 정부 보증도 그가 주도했다. 기업의 무기 입찰을 프랑스식 국가 총력전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독일 방산외교의 새로운 모델이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은 방산 4강의 고지가 얼마나 험한지를 보여준 예고편이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패배 자체가 아니다. 한국 방산의 무서운 속도와 가성비를 경험한 전통 강호들이 이미 업그레이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와 영국도 독일 이상으로 버거운 상대다. 세계 방산시장의 압도적 강자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기술과 속도는 기본값이 됐다. 판 전체를 흔들 외교와 정치의 체급까지 갖춰야 결승선 목전에서 밀리지 않는다. 필리핀과 사우디아라비아 수주전이 다음 시험대가 될 것이다.[email protected] 최진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