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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노동자로 들어와 '사장님' 됐다.. 15년 전 일자리 찾아온 네팔 청년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시온섬유 공장 노동자서 회사 대표로
비겐 대표 "받은 도움, 다시 나누는 삶"

지난 20일 오후 포천시 선단동 시온섬유 공장에서 비겐 대표가 섬유 생산 작업을 살펴보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경수 기자
지난 20일 오후 포천시 선단동 시온섬유 공장에서 비겐 대표가 섬유 생산 작업을 살펴보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포천=김경수 기자】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네팔 청년이 이제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15년 전 경기 포천시 땅을 밟은 시앙바 비갼 쿠마르(비겐·44)는 자신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경제에 힘을 보태는 한편,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 20일 포천 선단동의 한 사업장에서 만난 비겐은 처음부터 사업가를 꿈꾸며 한국에 온 것은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해 열심히 일하고,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교회 인연으로 공장 입사

처음 왔을 때부터 포천에 정착하지 않았다. 서울 고려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뒤 건국대 앞에서 인도 음식점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비겐은 교회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훗날 자신이 일하게 될 회사의 대표였다.

이 인연은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졌다. 비겐은 대표의 제안을 받아 지금의 섬유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직장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벅찼다. 생산 현장에서 기계를 다루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익혔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경험은 훗날 비겐이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언어와 문화가 낯설었고,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컸다. 무엇보다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3개월여 동안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마음을 추스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비겐은 일터를 중심으로 생활 기반을 하나씩 마련해 나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며 한국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그렇게 포천은 어느새 그에게 단순히 '일하러 온 곳'을 넘어, 오랜 시간 삶을 함께해 온 소중한 터전이 됐다.

■성실함으로 대표 수락

인생의 방향이 크게 바뀐 것은 6년여 전이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대표가 비겐에게 회사 운영을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단순히 경영을 돕는 역할을 넘어, 회사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사업자등록 명의까지 변경해 회사 운영을 직접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15년 전 일자리를 찾아 포천에 온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대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겐은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래도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왔는데, 내가 일하던 회사를 직접 이끌 수 있다는 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했다.

지난 20일 오후 포천시 선단동 시온섬유 사무실에서 만난 비겐 대표가 한국 생활과 회사 운영에 대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수 기자
지난 20일 오후 포천시 선단동 시온섬유 사무실에서 만난 비겐 대표가 한국 생활과 회사 운영에 대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수 기자

대표가 된 뒤에도 현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 역시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해온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힘든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낯선 나라에서 생활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누구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현재 회사에는 비겐을 포함해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한때 10명 안팎에 달했던 직원 수는 크게 줄었다. 회사 규모는 예전보다 작아졌지만, 직원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그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각별하다.

직원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네팔 출신이다. 비겐은 대표와 직원이라는 관계를 넘어 한국 생활에 어려움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며 자연스럽게 챙긴다.

■'도움'의 선순환

그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데에는 자신이 한국 생활을 하며 받았던 도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그의 삶에 남아 있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지나치기 어렵다.

그에게 포천은 이제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온 곳이 아니다. 노동자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자, 오랜 시간 일하며 자신의 사업을 일군 곳이다. 이제는 직원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자신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까지 살피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됐다.

비겐은 자신처럼 타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고, 가족과 함께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을 꿈꾼다.

비겐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언어도 어렵고, 생활도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지역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며 "외국인 직원들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잘 안다. 제가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비겐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단순히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사람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며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지역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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