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홈플러스, 매대 채울 시간은 열흘뿐

파이낸셜뉴스
오승범 생활경제부장
오승범 생활경제부장

유통시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소비자의 불평이 아니다. 개선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조용히 습관을 바꿀 때다. 생활동선에서 지워진 매장은 생존 기반마저 흔들린다. 지난달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홈플러스가 극적으로 자금을 수혈받아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회생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에 가깝다. 단기간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기업 정상화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토요일인 지난 15일과 22일에 찾은 서울 강서점(본점)의 모습은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재개장 첫날인 지난 13일 오픈런 행렬로 뜨거웠던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휴일임에도 매장은 한산했고, 층마다 고객의 발길이 뜸했다.

의류매장에는 T사와 A사 등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고, 가전매장은 대부분 브랜드들이 빠져나가 입구를 카트로 막아놓았다. 접시와 도마 등 주방용품이 들어찬 일부 신선식품 매대도 그대로였다. 푸드코트에 그나마 고객들이 있었지만 전체 좌석의 절반도 차지 않았다. 냉동식품과 과자 코너에 C사 등 몇몇 브랜드가 매대 하단을 제외한 채 다시 상품을 채운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였다.

대형마트에서 빈 매대는 일부 공급망이 끊겼다는 신호다. 특히 신선식품은 산지에서 가공장, 물류센터, 냉장차량을 거쳐 점포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공급망이 생명이다. 어느 한 고리만 이탈해도 매대에서 상품이 사라진다. 협력사들도 따져볼 게 적지 않다. 납품대금을 제때 받을 수 있는가. 주문량이 꾸준히 유지될 것인가. 팔리지 않은 상품의 반품과 폐기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등 다시 거래를 재개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홈플러스에 남은 시간은 너무 짧다. 부활의 첫 관문인 관계인집회가 오는 9월 2일로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채권자들에게 회생계획안에 대해 동의를 얻는 자리다. 지난해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간 뒤 수차례 기한을 연장해 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지막 승부처다. 결과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지난달 16일 메리츠가 긴급운영자금 2000억원을 승인한 후에도 실제 자금이 입금되기까지 20여일이 걸렸다. 보증 범위와 한도, 책임 소재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조율이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회생계획안이 가결되지 않으면 이틀 후인 9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서 회생절차를 다시 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3일 재개장 이후 영업성적은 단순한 매출실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유통기업의 존폐만 가르는 게 아니라 홈플러스의 직원과 입점한 소상공인 등 9400여명, 그리고 4600여곳에 달하는 협력사의 생계와 사업기반이 함께 걸려 있다. 수만명의 삶이 한 기업 운명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도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 공세에 약화된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고, 추가 자금도 필요하다.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회사를 정상화할 새 주인도 찾아야 한다. 매수가격도 청산가치 3조7000억원은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사 매각 전까지 지난해 기준 연간 346억원에 이르는 임차료와 1421억원 상당의 리스부채 상환 등 견뎌내야 할 재무적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이 모든 난제를 넘어서야 자생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사정을 봐달라는 호소만으로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시장경제에서 회생은 숫자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것과 '사업성'을 증명하는 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홈플러스가 지금 입증해야 할 것은 서류에 적힌 숫자만이 아니다. 당장 매대를 채우고(매대충족률), 고객이 다시 찾게 만들고(고객 재방문율), 협력사가 안심하고 상품을 공급(납품 지속성)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다. 매출은 그 결과일 뿐이다. 시장과 채권자들이 보고 싶은 것도 결국 이 숫자들일 것이다. 소비자가 다시 지갑을 여는 순간부터 회생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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